이장희 시인 / 봄은 고양이로다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生氣가 뛰놀아라.
이장희 시인 / 舞臺
거미줄로 짠 灰色 옷을 입은 젊은 사나이 흰 배암 紋儀로 몸을 꾸민 어여쁜 새악시
젊은이들은 철없이 반기며 妙한 춤을 추도다.
아, 그러나 香爐의 연기는 가늘게 떠올라라. 조용한 촛불은 눈물을 흘리며 꺼지려 하는 것을. 보아라, 푸른 달빛과 같은 애처로운 꿈이 아니뇨.
오, 춤추는 사람들의 애젊은 환영幻影이여. 눈물짓는 촛불의 가냘픈 숨결이여.
이장희 시인 / 실바람 지나간 뒤
님이시여 모르시나이까?
지금은 그리운 옛날 생각만이, 시들은 꽃 싸늘한 먼지 사그라진 촛볼이 깃들인 祭壇을 고이고이 감돌면서 울음 섞어 속삭입니다.
무엇을 빌며 무엇을 푸념하는지요
이장희 시인 / 불놀이
불놀이를 시름없이 즐기다가 아뿔싸! 부르짖을 때 벌써 내 손가락은 발갛게 되었더라
봄날 비오는 봄날 파랗게 여윈 손가락을 고요히 바라보고 남모르는 한숨을 짓는다
이장희 시인 / 새 한 마리
날마다 밤마다 내 가슴에 품겨서, “아프다, 아프다”고 발버둥치는 가엾은 새 한 마리.
나는 자장가를 부르며 잠재우려고 하지만, 그저 “아프다, 아프다”고 울기만 합니다.
어느덧 자장가도 눈물에 떨고요.
월간 『금성』 1924년 5월호(3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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