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시인 / 산
멀다고들 하지만 언제나 가깝고 가까우면서도 멀리, 무척 멀리 깊고 굵은 선으로 사방을 잇는 산마음이 무겁다.
높은 자리 낮은 자리 가리지 않아 등성이나 마루턱을 맘놓고 굽이치고, 넘으면 그 너머 또 그 너머 하나가 백으로 겹겹이 뻗는 생각.
하늘과 땅을 같이 사는 산은 말이 있기 전 시인의 머리, 시인의 가슴인가 보다.
정(情), 둥지, 1994
고원 시인 / 선인장
1
물도 없이 물이야 필요 없이 모래와 살다 보면 무너지지 않는 `무(無)'. 새끼를 친다.
2
가시의 가시가지 그 `허(虛)'에 찔리면 초록 짙은 태양이 피를 전한다. 뿔 돋친 불.
물너울, 창작과비평사, 1985
고원 시인 / 시간의 문법
떠나서 남은 체취와 새들이 들은 숲 속의 속삭임, 추억 때문에 과거를 안다.
꽃을 피울 바람의 약속이 멀어 뜬 눈으로 누운 냇가의 붕어. 기다림 때문에 현재를 느낀다.
잠든 태양을 머금은 바다에 등대의 실패를 흘려 보낼 성좌의 입김에 미래가 빛난다.
속삭이는 불의 꽃, 신흥출판사,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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