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시인 / 병상(病床)
내 어찌 조심 없이 세상을 살았기로 뜯기고 할퀴어 왼몸에 상처(傷處)거니 이 위에 병을 마련해 날로 이리 지든다
잦아진 촛불인 양 숨소리도 가냘프고 외로 돌아누워 눈이 띈지 감겼는지 창(窓)밖에 저무는 빛이 죽음같이 고와라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옥 시인 / 봄
심지어 동냥 온 쪽박에도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신(神)도 이런 날은 저 달동네 꼬맹이처럼
추녀 밑 제비 새끼랑 해종일 재잘거리고 논다.
창작과비평, 1991.봄
김상옥 시인 / 봉선화(鳳仙花)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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