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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김상옥 시인 / 병상(病床)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2. 24.

김상옥 시인 / 병상(病床)

 

 

내 어찌 조심 없이 세상을 살았기로

뜯기고 할퀴어 왼몸에 상처(傷處)거니

이 위에 병을 마련해 날로 이리 지든다

 

잦아진 촛불인 양 숨소리도 가냘프고

외로 돌아누워 눈이 띈지 감겼는지

창(窓)밖에 저무는 빛이 죽음같이 고와라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옥 시인 / 봄

 

 

심지어

동냥 온 쪽박에도

눈부신 햇살이 쏟아진다.

 

신(神)도

이런 날은

저 달동네 꼬맹이처럼

 

추녀 밑

제비 새끼랑

해종일 재잘거리고 논다.

 

창작과비평, 1991.봄

 

 


 

 

김상옥 시인 / 봉선화(鳳仙花)

 

 

비 오자 장독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 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 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노나

 

초적(草笛), 수향서헌, 1947

 

 


 

김상옥(金相沃 1920년-2004년) 시인

시조 시인. 서예가. 서화가. 수필가.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통영군에서 출생. 아호(雅號)는 초정(草汀), 초정(艸丁), 초정(草丁). 일본 오사카 상업학교 중퇴. 1938년에는 김용호, 함윤수 등과 함께 <맥> 동인으로 활동. 시조 《봉선화》를 《문장》지에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1941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낙엽》으로 등단. 1956년부터 마산고등학교, 부산여자고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 1967년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1980년 제1회 노산문학상. 1989년 제시문화상. 1989년 제시조대상. 1995년 보관문화훈장. 시조집으로 《고원의 곡》, 시집으로 《이단의 시(1949》 《의상》, 동시집으로 《석류꽃》 《꽃속에 묻힌 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