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시인 / 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박재삼 시인 / 첫사랑 그 사람은
첫사랑 그 사람은 입맞춘 다음엔 고개를 못 들었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네.
비단올 머리칼 하늘 속에 살랑살랑 햇미역 냄새를 흘리고, 그 냄새 어느덧 마음 아파라, 내 손에도 묻어 있었네.
오, 부끄러움이여, 몸부림이여, 골짜기에서 흘려보내는 실개천을 보아라, 물비늘 쓴 채 물살은 울고 있고, 우는 물살 따라 달빛도 포개어진 채 울고 있었네.
박재삼 시인 / 햇빛의 선물
시방 여릿여릿한 햇빛이 골고루 은혜롭게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고 있는데, 따져보면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무궁무진한 값진 이 선물을 그대에게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절실하건만 내가 바치기 전에 그대는 벌써 그것을 받고 있는데 어쩔 수가 없구나. 다만 그 좋은 것을 받고도 그저 그렇거니 잘 모르고 있으니 이 답답함을 어디 가서 말할 거나
박재삼 시인 / 혹서일기
잎 하나 까딱 않는 30 몇 도의 날씨 속 그늘에 앉았어도 소나기가 그리운데 막혔던 소식을 뚫듯 매미 울음 한창이다.
계곡에 발 담그고 한가로운 부채질로 성화같은 더위에 달래는 것이 전부다. 예닐곱 적 아이처럼 물장구를 못 치네.
늙기엔 아직도 멀어 청춘이 만리인데 이제 갈 길은 막상 얼마 안 남고 그 바쁜 조바심 속에 절벽만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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