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 시인 / 김홍도의 ‘빨래터’로 짜장면 배달
오늘은 철가방에 짜장면과 함께 검은 갓, 하늘색 도포, 부채를 넣어야지 계곡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므로 뻐꾸기 노래와 풀잎 냄새를 바퀴로 써야지 시동이 걸린 오토바이가 먼저 심장을 벌렁벌렁거리며 달려가는구나 태양이 뙤약볕을 사정없이 내려쬐는 한낮 빨래하는 여인들은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고 있겠지 젖 달라고 우는 아이만 없으면 좋겠고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은 비밀이지 다만 입간판의 불빛과 평상의 지루함만이 내 허리를 꽉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데 너희들은 이따가 짜장면 그릇이나 찾으러 가렴! 고온과 미칠 듯한 습도를 헬멧으로 쓰고 꽃바람이 주문한 주소지를 신나게 찾아가야지 시원하게 길을 터주는 버드나무 그늘 짜장면 네 그릇 때문에 이유 없이 관음증이 서비스로 따라 가지 빨래터까지 가는 길을 구불구불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있으므로 젖은 옷을 벗어 말릴 즈음 신속배달 될 예정이지 그리하여 짜장면이 퉁퉁 불기 전까지는 바위 뒤에 숨어 여인들의 손 방망이질 소리 밑에서 밀려오는 깊은 향기에 빠져있어야지
웹진 『시인광장』 2014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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