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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근대)

박목월 시인 / 아침마다 눈을 뜨면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2. 14.

박목월 시인 / 아침마다 눈을 뜨면

 

 

사는것이 온통 어려움 인데

세상에 괴로움이 좀 많으랴

사는 것이 온통 괴로움인데

 

그럴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착한 일을 해야지 마음속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로 서로가 돕고 산다면

보살피고 위로하고 의지하고 산다면

오늘 하루가 왜 괴로우랴

 

웃는 얼굴이 웃는 얼굴과

정다운 눈이 정다운 눈과

건너보고 마주보고 바로보고 산다면

아침마다 동트는 새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우랴

 

아침마다 눈을 뜨면 환한 얼굴로

어려운 일 돕고 살자 마음으로

다짐하는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박목월 시인 / 어머니의 언더라인

 

 

유품으로는

그것 뿐이다.

붉은 언더라인이 그어진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

가난과

인내와

기도로 일생을 보내신 어머니는

파주의 잔디를 덮고

잠드셨다.

오늘은 가배절

흐르는 달빛에 산천이 젖었는데.

이 세상에 남기신

어머님의 유품은

그것 뿐이다.

가죽으로 장정된

모서리가 헐어 버린

말씀의 책

어머니가 그으신

붉은 언더라인은

당신의 신앙을 위한 것이지만

오늘은 이순의 아들을 깨우치고

당신을 통하여

지고 하신 분을 뵙게 한다.

동양의 깊은 달밤에

더듬거리며 읽는

어머니의 붉은 언더라인

당신의 신앙이

지팡이가 되어 더듬거리며

따라가는 길에

내 안에 울리는

어머니의 기도소리

 

 


 

 

박목월 시인 / 이 후끈한 세상에

 

 

참으로 남을 돕는 일이

저를 위하는

그 너르고도 후끈한

'우리'들의 생활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인간'이 빚어지고

남과 더불어 짜는

그 오묘한 생활의

그물코에

오늘의 보람찬 삶

세상에는

완전타인이란 있을 수 없다.

눈에 보이는,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든든한 밧줄로 서로 맺어져

우리는 서로 돕게 된다.

다만 에고의 색맹자만이

나와 남사이에 얽혀진

그 든든하고 따뜻하고

신비스러운 밧줄을

깨닫지 못한다.

참으로 남을 돕는 일이

저를 위하는

이 후끈한 세상에

오늘의 찬란한 아침이 열린다.

 

 


 

 

박목월 시인 / 이런 시(詩)

 

 

슬며시 다가와서

나의 어깨를 툭치며

아는 체 하는

그런 詩,

대수롭지 않게

스쳐가는 듯한 말씨로써

가슴을 쩡 울리게 하는

그런 詩,

읽고 나면

아, 그런가부다 하고

지내쳤다가

어느 순간에

번개처럼

번쩍 떠오르는

그런 詩,

투박하고

어수룩하고

은근하면서

슬기로운

그런 詩

슬며시

하늘 한자락이

바다에 적셔지 듯한,

푸나무와

푸나무 사이의

싱그러운

그것 같은

그런 詩,

밤 늦게 돌아오는 길에

문득 쳐다보는,

갈라진 구름 틈서리로

밤하늘의

눈동자 같은

그런 詩.

 

 


 

 

박목월 시인 / 평온한 날의 기도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평온한 날은

평온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양지 바른 창가에 앉아

인간도 한 포기의

화초로 화하는

이 구김살 없이 행복한 시간.

 

주여, 이런 시간 속에서도

당신은 함께 계시고

그 자애로우심과 미소지으심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해주시는

그 은총을 깨닫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평온한 날은 평온한 마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고

강물같이 충만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게 하십시오.

 

순탄하게 시간을 노젓는

오늘의 평온 속에서

주여, 고르게 흐르는 물길을 따라

당신의 나라로 향하게 하십시오.

 

3월의 그 화창한 날씨 같은 마음속에도

맑고 푸른 신앙의 수심(水深)이 내리게 하시고

온 천지의 가지란 가지마다

온 들의 푸성귀마다

움이 트고 싹이 돋아나듯

믿음의 새 움이 돋아나게 하여 주십시오.

 

 


 

박목월[朴木月, 1915.1.6~1978.3.24] 시인

본명은 영종(泳鍾). 1916년 경상남도 고성(固城)에서 출생하여 경상북도 경주(慶州)에서 자람. 1935년 대구 계성(啓聖)중학 졸업. 정지용(鄭芝溶)에 의해 1939년 문예지 《문장(文章)》에 시가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청록집(靑鹿集)』(3인시), 『경상도가랑잎』, 『사력질(砂礫質)』, 『무순(無順)』 등과 수필집으로 『구름의 서정』, 『밤에 쓴 인생론(人生論)』 그밖의 저서로는 『문학의 기술(技術)』, 『실용문장대백과(實用文章大百科)』 등이 있음. 1953년 홍익대학교 조교수, 1961년 한양대학교 부교수 및 1963년 교수, 1965년 대한민국 예술원(藝術院) 회원, 1968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73년 시전문지 『심상(心像)』의 발행인, 1976년 한양대학교 문리과대학장 역임. 자유문학상, 5월문예상,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상. 1978년 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