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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유니 시인 / 방드르디, 더 오래 더 멀리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

장유니 시인 / 방드르디, 더 오래 더 멀리

 

 

나는 화살을 만든다

 

태양은 뒷골목으로만 굴러다녔지

 

오늘아침 한 그루 나무가 솟아올랐어 올리브를 먹을까 저녁마다 노을 품는 올리브나무 식탁에는 방드르디 떨어진 씨가 열매로 보였지 올리브 씨앗 속에 기도처럼 발아하는 소원 나무는 위장을 뚫고

 

바람이 몰려다닌다 방드르디 낡은 휘파람 날리는 고원에는 내가 쓰지 못한 문장과 네가 읽지 않은 책들과 네가 풀려고도 하지 않은 매듭들 올리브 이파리들이 음율을 흔들고 있었지

 

숨이 막힌 고래가 해안가에 기어오른다는 이유 하나로 몰래 키우던 방드르디 금붕어 수조에 황금갈기 사자를 내다버렸다지 방드르디 방드르디의 방언으로 번지는 비린내들 지구상에는 온통 비대면의 지질학적 세계 방드르디가 원을 그릴수록 중력이 사라진다 네 입술에 담긴 담배연기 눈을 깜박거리는 내일을 향해 날아갈 화살을 만들고 있지

 

밤에는 방드르디의 규율이 있어, 웃지 말 것 잠들지 말 것 꿈꾸지 말 것 사랑하지 말…, 고독할 것

 

남극에서 보낸 통조림을 따다가 차가운 피가 손가락에 얼어붙었어 물음표가 찍힌 네 이름 그 때문에 올리브 나무 어린 묘목에 쏠린 환풍기 바람이 덜컹덜컹 창문을 흔들었지 방드르디 그 사이 바스락거리던 오월의 한 나절이 지나간다

 

나는 더 높이 더 멀리 쏘아올릴 화살을 만든다

 

웹진 『시인광장』 2021년 7월호 발표

 

 


 

장유니 시인

연세대 불어불문학과 학사 및 미국 펜실바니아주립대 석사 졸업. 2019년 계간 《시와 표현》으로 등단. 중앙대 및 서울교대 등의 대학에서 영어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