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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준연 시인 / 실수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6.

김준연 시인 / 실수

 

 

컵은 쉽게 동의한다

묻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인다

 

너의 동의를 마시고

너를 내려놓기도 전에

너는 또다시 동의한다

 

너는 계단에 동의하고

계단의 꺾어짐에 동의하고

벽지에 핀 곰팡이에 동의하고

어항과 어항 속 물고기들에 동의한다

 

 바닥에 동의하고

바닥의 기울어짐에 동의한다

문에 동의하고

문의 열림과 닫힘에 동의한다

 

너를 놓쳐 산산조각 난다

너는 동의한다

파편 하나하나 모두 동의한다

 

너를 놓친 건

실수가 아니었다

 

너는

역시 동의한다

 

 


 

김준연 시인

1966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시와반시》로 등단했다. 시집 <고양이를 입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