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향옥 시인 /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부풀어 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앉아 날뛰는 맥을 지그시 눌러 식혀주던 손길 같은
차가운 돌을 쥐고 있으면 들뜬 열이 내려가고 멋대로 넘어가는 페이지를 눌러두기에 좋았는데 어느 날 도서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몸 깊은 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놓친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두 동강 난 돌을 잇대보았지만 깨진 돌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가슴에서 시작된 실금이 무섭게 자라났다
식었다 뜨거워지는 온도 차이가 돌 안쪽에 금을 내고 있었던 걸 몰랐다
이제 그만 됐다고 따뜻해진 돌이 속삭였다
그날, 달빛 밝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깨진 돌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달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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