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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백향옥 시인 /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by 파스칼바이런 2021. 10. 28.

백향옥 시인 / 돌의 찬 손이 이마를 짚어주다

 

 

부풀어 오르는 흙이 좋아 맨발로 숲을 걸었다

바닷물에 발을 씻다가 만난 돌은

손바닥에 꼭 맞는 매끄러운 초승달 모양

 

열병을 앓을 때 이마를 짚어주던 당신의 찬 손

분주하게 손을 닦던 앞치마에 묻어 온 불 냄새, 바람 냄새, 놀란 목소리

곁에 앉아 날뛰는 맥을 지그시 눌러 식혀주던 손길 같은

 

차가운 돌을 쥐고 있으면 들뜬 열이 내려가고

멋대로 넘어가는 페이지를 눌러두기에 좋았는데

어느 날 도서관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져 깨져버렸다

 

몸 깊은 곳에서 금이 가는 소리를 들었다

놓친 손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두 동강 난 돌을 잇대보았지만

깨진 돌은 하나가 될 수 없고

가슴에서 시작된 실금이 무섭게 자라났다

 

식었다 뜨거워지는 온도 차이가

돌 안쪽에 금을 내고 있었던 걸 몰랐다

 

이제 그만 됐다고 따뜻해진 돌이 속삭였다

 

그날, 달빛 밝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깨진 돌을 가만히 놓아주었다

달에게 돌려주었다

 

 


 

백향옥 시인

1968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202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