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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장성호 시인 / 손맛 외 5편

by 파스칼바이런 2021. 11. 27.

장성호 시인 / 손맛

 

 

음력 사월 초하루가 되면

소래 포구에서 어머니는

알밴 꽃게 한 마리 사오셨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시고

마당에 솥단지 걸어놓고

간장을 뭉근한 불에 오래 끓이셨다

식힌 간장에 참게 넣고 삭혀

간장게장을 만드셨다

그 어린 시절

암게의 앞가슴 풀어헤치면

노란 꽃송이 따고 싶었다

아버지가 다 드신 빈 게딱지에

밥을 꾹꾹 비벼 먹었다

햇살 먹은 장독대 항아리 안에서

참게 한 마리 꺼내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

 

 


 

 

장성호 시인 / 추어탕

 

 

꼭두새벽

초량동 할매 추어탕집

주둥이 내밀고 잔소리 하던 영감탱이

수염달린 입가에 왕소금 뿌리자

쾨쾨한 해감 토해냈다

손끝으로 한 양동이 뼈째 곱게 갈아

시래기나 고사리 같은 나물거리 넣고

미꾸라짓국 한 솥 끓여냈다

입소문 나 할배들이 몰려와

점심나절 동났다

감나무에 가을 주렁주렁 달리던 그해

늘그막 바람나 딴살림 차렸던 영감탱이

채 달포 못 가 쪽박 신세로 돌아와서도

할매 끓여준 미꾸라짓국 한 그릇

다 비우고 용트림 했다

 

 


 

 

장성호 시인 / 문상

 

 

발자취 드문 지하상가 1호실

흰 봉투 하나 내놓고 받아든

노란 국화 한송이

반갑게 맞아 주시는 할아버지

왼 가슴에 고이 달아드렸다

큰 절 두 번 올리고 나니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다며

두 손 꼭 잡아주시는 눈 맑은 영혼

가지런히 벗어놓은 구두 두 짝

할아버지 덕담에 귀 기울였다

바쁜데 찾아주어 고맙다며

홍어회 한 접시랑 술 한 병 내놓으셨다

가을 물들어가는 고향 선산으로

아침 일찍 떠나시는 할아버지,

서둘러 몸 정갈하게 씻으시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셨다

허리끈 꽁꽁 묶으시고

 

 


 

 

장성호 시인 / 시장통 할매

 

 

찬비 내리는 초량 시장통

좌판대마다 우산을 세운다

기둥 허리는 휘어져 비틀대고

살과 살이 맞닿은 곳엔

붉은 녹이 짙게 배어 있다

비 오는 산 속 저 꼬부랑 할매

시린 왼 무르팍 절룩거리며

줄을 붙들어 맨다

단골 장씨에게 남은 단감

떨이로 몽땅 판 목이 쉰 할매

새까만 앞치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묶음 꺼내

침 발라가며 세고 있다

죽지 않는 시장통 할매

 

 


 

 

장성호 시인 / 고등어

 

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뼈마디 쑤신다며

등판에 부항을 뜨셨다

소인배들의 등쌀에

피멍이 굽은 등에 들었다

한때 늘 푸른 바다로

친구와 떼 지어 다니셨다

엊그제 친구분이 간고등어

열 손을 보내왔다

저 등 푸른 영혼도 바닷속을

휘저으며 뽑냈을 것이다

저녁 밥상에 올라온

고등어구이 한 접시,

 

 


 

 

장성호 시인 / 어머니 밥상

 

 

비릿한 바람

가을의 문턱 넘어서는 칠암식당

삼대째 칼 잡은 주인집 할머니의

손끝이 분주하다

앞바다에서 막 건져올려 고슬고슬한

밥 한 상 차리신다

오래된 대나무 쟁반에 소복이 담긴

쌀밥이 꼬들꼬들하다

살 오른 실붕장어 세꼬시에서

기름기와 물기 쪽 빼낸 새하얀 밥알,

한 숟가락 듬뿍 떠 상추에 싸서

초고추장에 버무린 잘게 썬 양배추

얹어 먹으면 고소한 바닷냄새로

입에 척척 감긴다

가을만 되면 고향 찾아와

칠암 앞바다 어머니 밥상 받아드는

떠돌이 김씨,

 

 


 

장성호 시인

1958년 서울 출생.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와 서울대 행정대학원. 2005년 <시와 창작>으로 등단. 현재 건설교통부 공항개발팀장으로 재직 중. 첫 시집 '가을겨울봄여름'(문학의전당 펴냄)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