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 시인 / 손맛
음력 사월 초하루가 되면 소래 포구에서 어머니는 알밴 꽃게 한 마리 사오셨다 수건을 머리에 두르시고 마당에 솥단지 걸어놓고 간장을 뭉근한 불에 오래 끓이셨다 식힌 간장에 참게 넣고 삭혀 간장게장을 만드셨다 그 어린 시절 암게의 앞가슴 풀어헤치면 노란 꽃송이 따고 싶었다 아버지가 다 드신 빈 게딱지에 밥을 꾹꾹 비벼 먹었다 햇살 먹은 장독대 항아리 안에서 참게 한 마리 꺼내시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
장성호 시인 / 추어탕
꼭두새벽 초량동 할매 추어탕집 주둥이 내밀고 잔소리 하던 영감탱이 수염달린 입가에 왕소금 뿌리자 쾨쾨한 해감 토해냈다 손끝으로 한 양동이 뼈째 곱게 갈아 시래기나 고사리 같은 나물거리 넣고 미꾸라짓국 한 솥 끓여냈다 입소문 나 할배들이 몰려와 점심나절 동났다 감나무에 가을 주렁주렁 달리던 그해 늘그막 바람나 딴살림 차렸던 영감탱이 채 달포 못 가 쪽박 신세로 돌아와서도 할매 끓여준 미꾸라짓국 한 그릇 다 비우고 용트림 했다
장성호 시인 / 문상
발자취 드문 지하상가 1호실 흰 봉투 하나 내놓고 받아든 노란 국화 한송이 반갑게 맞아 주시는 할아버지 왼 가슴에 고이 달아드렸다 큰 절 두 번 올리고 나니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다며 두 손 꼭 잡아주시는 눈 맑은 영혼 가지런히 벗어놓은 구두 두 짝 할아버지 덕담에 귀 기울였다 바쁜데 찾아주어 고맙다며 홍어회 한 접시랑 술 한 병 내놓으셨다 가을 물들어가는 고향 선산으로 아침 일찍 떠나시는 할아버지, 서둘러 몸 정갈하게 씻으시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셨다 허리끈 꽁꽁 묶으시고
장성호 시인 / 시장통 할매
찬비 내리는 초량 시장통 좌판대마다 우산을 세운다 기둥 허리는 휘어져 비틀대고 살과 살이 맞닿은 곳엔 붉은 녹이 짙게 배어 있다 비 오는 산 속 저 꼬부랑 할매 시린 왼 무르팍 절룩거리며 줄을 붙들어 맨다 단골 장씨에게 남은 단감 떨이로 몽땅 판 목이 쉰 할매 새까만 앞치마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한 묶음 꺼내 침 발라가며 세고 있다 죽지 않는 시장통 할매
장성호 시인 / 고등어
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뼈마디 쑤신다며 등판에 부항을 뜨셨다 소인배들의 등쌀에 피멍이 굽은 등에 들었다 한때 늘 푸른 바다로 친구와 떼 지어 다니셨다 엊그제 친구분이 간고등어 열 손을 보내왔다 저 등 푸른 영혼도 바닷속을 휘저으며 뽑냈을 것이다 저녁 밥상에 올라온 고등어구이 한 접시,
장성호 시인 / 어머니 밥상
비릿한 바람 가을의 문턱 넘어서는 칠암식당 삼대째 칼 잡은 주인집 할머니의 손끝이 분주하다 앞바다에서 막 건져올려 고슬고슬한 밥 한 상 차리신다 오래된 대나무 쟁반에 소복이 담긴 쌀밥이 꼬들꼬들하다 살 오른 실붕장어 세꼬시에서 기름기와 물기 쪽 빼낸 새하얀 밥알, 한 숟가락 듬뿍 떠 상추에 싸서 초고추장에 버무린 잘게 썬 양배추 얹어 먹으면 고소한 바닷냄새로 입에 척척 감긴다 가을만 되면 고향 찾아와 칠암 앞바다 어머니 밥상 받아드는 떠돌이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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