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시인 / 소금
소금이 바다의 상처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이 않다
소금이 바다의 아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이 않다
세상의 모든 식탁위해서 흰눈 처럼 소금이 떨어져 내칠때 그것이 바다의 눈물이 라는 걸
아는 사람은 많이 않다 그눈물이 있어 이세상 모든 것이 맛을 낸 다는 것을
류시화 시인 / 생활(生活)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어둠의 門을 열고 맨 처음 세상으로 나온 아이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아침은 소리없이 움직임만으로 와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힘 四方에서 입술을 부비며 스며든다 손바닥 위에 놓인 生의 조각들을 쪼아먹는 소망의 뜰에 내린 새 몇마리 앉아있다 날아간 자리 버리고 남은 버릴 수 없이 슬픈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밤의 꿈으로 문질러두고 지금 窓을 닦고 있는 내 손길 아래 세상의 어느 한 곳이 닦여지고 있다
톱밥처럼 흩어지는 日常의 책장들 良識은 굳은 어깨뼈처럼 튼튼하지 못하고 길모퉁이에 잠복해 있는 먼지의 덫, 보이지 않는 손들의 굴레 一部分씩 닦여져 나간다 빈 접시에 채우는 하루분의 양심과 빵 하나의 自由로 시작되는 이 아침, 햇빛은 하늘의 층계를 걸어 내려와 無垢한 눈망울을 가진 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어디로 어디로 데려가는가
아침의 門을 열고 맨 처음 밖으로 나온 아이의 두 눈 窓을 닦다 보면 마치 세상의 어느 한 끝을 닦는 것 같다.
-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류시화 시인 / 빵
내 앞에 빵이 하나 있다 잘 구워진 빵 적당한 불길을 받아 앞뒤로 골고루 익혀진 빵 그것이 어린 밀이었을 때부터 태양의 열기에 머리가 단단해지고 덜 여문 감정은 바람이 불어와 뒤채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제분기가 그것의 아집을 낱낱이 깨뜨려 놓았다 나는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살았다 저 자신만 생각하느라고 제대로 익을 겨를이 없었다
내 앞에 빵이 하나 있다 속까지 잘 구워진 빵.
류시화 시인 / 첫사랑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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