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권자미 시인 / 미혹의 그 꽃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3. 15.

권자미 시인 / 미혹의 그 꽃

 

 

한 다발 꽃이 부인과로 왔다

 

이 무슨 짓인가?

문병 온 꽃을 입원시키다니

 

환자용 생리대 감고

비닐 물주머니 다는

응급처치가 시급하다

 

 

자궁적출 수술 받은 꽃들이

홀대 끌고 꽃 문병 다녀갔다

 

병명은 차마 말할 수 없다

예후가 그리 좋지 않다

 

아픈 꽃은 고개부터 고꾸라진다

꽃은 아프다. 피 흘리지 않아도

 

 


 

 

권자미 시인 / 달의 코러스

 

 

니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안된다

우리 사이에 뭘, 반절 뚝 떼서 형님 드리는

인심 한번 푸진 달이다

 

보일러 수리공 셋, 장맛비 핑계 삼는 거한 달이다

 

마당가에 금송아지 매어 놓고

한번 마주한 적 없는 선대 만석지기 자손 달이다

 

난 말이요 거 뭐냐 노가다부터 때려치우고

삐까번쩍한 놈으로다가 한 대 뽑고

거 뭐냐 직싸게 고생만한 마누라 데리고 푸껫으로 날아갈랍니다

 

더런 놈 세상 인생 뭐 있나 헛주먹 훅훅 먹여주는 달이다

 

아 지랄, 니는 니 꼴리는 대로 나는 나 꼴리는 대로 살아보자고

어깃장 쓰는 달이다

 

호프집 홍보용으로 나눠 준 복권 한 장 들고

물렁 반죽으로 임시 맞춤한 달이다

 

오늘은 중천의 달도 이래저래 땡 친 날이다

 

 


 

권자미 시인

2005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지독한 초록』(애지, 2012)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