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수 시인 / 아마, 토마토
토마토즙 흘러내리는 식탁에 앉아있었어 달콤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았지 처음부터 그걸 먹으려는 의도는 없었어 여튼,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 거야 식탁에서 흘러 내리는 토마토 기억하겠지만 첫 만남은 갓 연두를 벗어난 붉은 짭짤이 토마토 울룩불룩 포즈로 접시에 담겨 있었어 연애의 시작은 이런 거였지 붉지 않아도 붉게 터질 거라고 상상하는,
그래도 토마토였기 때문일 꺼야
토마토즙 흐르는 식탁 위로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낯선 고요가 터지는 밤이었지 식탁은 지루하게 토마토즙을 받 아내고 있었거든 수많은 연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식탁에 그려진 침묵은 사각기둥이 되고 벽이 되었지 번개가 친 건 그때였어 시도 때도 없는 탱탱한 울림 적응이 안 된 내 피부는 축 늘어지고 말았어 파란 연애를 하기엔 부족한 시간,
짧은 문장만 남기고 시들어 가고 말았지
살짝 질긴 껍질을 걷어 내고 쌉싸름한 물망울들이 터지면 건강한 웃음이 시작된다는데 붉게 터지는 그게 파란 연애라고 하기엔 무언가 어설퍼 연두를 건너 붉음으로 소란스런 달빛을 맞으며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심장을 받아주기에 아직 밤이 지나지 않았지 그러저러 시간을 돌돌 말아 웅크리고 있는,
붉은 아마, 토마토
조연수 시인 / 침착한 균열
흔들리는 못을 빼서 다시 박는다 헐거워진 구멍은 시멘트 가루를 흘려보낸다 못을 향한 망치의 두드림, 커질수록 벽의 구멍은 더 느슨하고 못은 휘어진다 받아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 몰래 창을 넘은 햇살처럼 문득 서글프다 적막함이 소리를 가져가듯 못이 바닥에 덩그러니 망치와 휘어진 못과 시멘트 가루 떨어지는 벽이 일정한 균열을 이루며 침묵한다 갈라진 골을 따라 흘러 들어가는 노래 어젯밤이 끝이야 얇은 계절을 좋아하는 너의 균열을 읽지 않을 거야 노래는 침착하게 갈비뼈 사이를 관통한다 아물지 않은 가사는 식탁 위에서 곪아가고 기억이 없는 혀는 갈라진 벽을 핥아댄다 어젯밤이 끝이라구 끈적한 노래가 사각으로 흘러나오는 스피커 위로 침착하게 균열이 지나가고 철지난 엉겅퀴들이 벽에 기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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