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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연순 시인 / 분홍 눈사람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7. 2.

한연순 시인 / 분홍 눈사람

 

 

오래된 잿빛 뼈마저

온 동네 꽃잎 내리는 날

 

나무와 나무 사이

전동 휠체어 한 대 멈춰 있다

 

흩날리는 꽃잎 음계를 밟고

따라갈 수 없는 마음인가

 

가슴을 문지르는 그리움에게

말을 걸고 있는 걸까

 

점심이 지나도록

나무와 나무 사이

한 사람이 그대로 앉아 있다

 

기억의 빈 문간에 꽂혀 있는

시간의 빛깔

 

 


 

​한연순 시인 / 공갈빵

 

 

백일몽이라도

잠적한 꿈은 늘 발효를 시도하지

 

누군가 텅 빈 내용을

먹고 있다

 

헛된 꿈이라도 잡고 싶은 날

 

봄볕에 모여든 사람들이

희망처럼 부풀어 오른

 

산산조각을 먹는다

 

단 꿀물 흐르는

허공의 메아리를

 


 

 

​한연순 시인 / 봄밤

 

 

덜컥 나의 심장에

시동이 걸릴 수만 있다면

 

골망이 찢기도록 너를 향해

중거리 슛을 날릴 수만 있다면

 

각자 축구경기를 보는 동안

놀란 별들이 밤하늘에 나와 있다

 

오발탄이라도 쏘아 올리고 싶은 밤

희미했던 별들이 찬란하다

 

시간의 기억들이 굴러서

별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 시집 <분홍 눈사람> 2021.예술가

 


 

한연순 시인

전북 정읍에서 출생, 전주교대, 인천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2000년 월간 《조선 문학》 시부문 등단. 시집으로 『방치된 슬픔』, 『공기벽돌 쌓기 놀이』, 『돌담을 쌓으며』, 『분홍 눈사람』이 있음. 조선시문학상, 인천PEN문학상 수상. 2021년 인천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