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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완호 시인 / 공중의 완성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

박완호 시인 / 공중의 완성

 

 

더는 날아오를 까닭을 찾지 못할 때 새는

문득 수직으로 떨어지는 꿈을 꾸기 시작한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던 우듬지의

고개가 아래쪽으로 젖혀질 무렵, 새는

저 먼 바닥으로부터 솟구치는 공기의

텅 빈 속내가 불현듯 궁금해지는 것이다.

 

날개를 흔들어 댈 때마다

양쪽 겨드랑이가 간지러워지는 까닭을

나뭇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

발바닥에 짜릿하게 와 닿는 결별의 감각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바닥이 가까워질수록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처럼 어디서 가늘게 떨고 있을

벌레들의 숨결을 짚어가며

새는 한순간에 허공을 가로지른다.

 

공중은, 꿈꾸는 한 마리 새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계간 『시와 편견』 2021년 겨울호 발표

 

 


 

박완호 시인

충북 진천에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너무 많은 당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아내의 문신』,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내 안의 흔들림』 등이 있음. 김춘수시문학상 수상. 〈서쪽〉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