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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임경묵 시인 / 꽃피는 스티로폼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2.

임경묵 시인 / 꽃피는 스티로폼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고

스티로폼 조각은 골목을 굴러간다

피자 배달 오토바이가

스티로폼 조각을 툭 치고

골목 속으로 사라진다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한 귀퉁이가

골목을 굴러간다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조각도

핑그르르 돌다가

골목을 굴러간다

피자 배달을 마치고 골목을 나오던 오토바이가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조각을

다시 정면으로 밟고 지나간다

스티로폼이 파삭 부서진다

그 속에서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무수히 태어난다

골목을 빠져나가는 오토바이 뒤를

좋다고 따라가는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

봄바람은 불고

벚꽃은 흩날리고

스티로폼 흰 알갱이들이

일제히 과속방지턱을 통통통 뛰어넘어

골목 밖으로 굴러간다

 

- 《시인동네》 2019년 10월호

 

 


 

 

임경묵 시인 / 임춘묵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왼발이 아기 발처럼 작고 말랑말랑한 춘묵이는

금강(錦江)을 퍼 올려 인근 평야에 물을 대는 양수장 관사에 살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사귄 친구인데

나와 본관도 같고

돌림자도 같아

혹시 머언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번에 그와 친해졌다

 

그는 목발을 짚고도

백미터 달리기를 십팔 초에 끊을 만큼 빨랐다

산허리를 염소처럼 쏘다니며

갓 나온 버섯과 잘 익은 산딸기를 찾아내고

내가 족대를 대고 강가에 서 있으면

그는 먼 데서부터

물풀을 헤치며

우르르 피라미를 몰아오고

발가락으로 강바닥을 더듬거려

말고기처럼 쫄깃하다는 말조개를 잘도 잡아냈다

 

가끔,

살아가는 일 팍팍하고

삶의 길목에서 잔뜩 풀이 죽어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

여름밤 백사장에 나란히 누워

그와 함께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던 일과

굳은살 박인 손바닥과

넓은 어깨로

목발을 단단히 짚고 강둑에 홀로 서서

저문 강을 바라보며

긴 휘파람을 불던 그를

문득 떠올린다

 

 


 

임경묵 시인

1970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 충남 천안에서 성장. 공주대학교 한문교육학과와 한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 2008년 하반기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체 게바라 치킨 집』(문학수첩, 2019)가 있음.  2006년도 제8회 수주문학상 수상. 2011년 대산창작기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