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랑 시인 / 뒷사람
흰 모시적삼 아버지 중절모에 팔자걸음이 앞서가고 누런 베적삼 어머니는 열무 단을 이고 따라간다 힐끗 돌아보며 왜 이리 더디냐고 타박하던 아버지
한껏 치장한 젊은 며느리 깃털 같은 손가방 들고 아들은 아이 안고 기저귀가방도 들었다 뒤를 보며 늦었다고 짜증내는 며느리
힘든 것은 언제나 뒤쪽에 있다
- 시집 『물은 소리로 길을 낸다』(천년의시작, 2015)
최태랑 시인 / 정글戰
퇴직금 털어 피자집을 차린 부부 대박을 꿈꾸며 정글 속으로 갔다 귀를 쫑긋 세우고 프랜차이즈 전술을 배운다
이 정글의 터줏대감은 한자리에 십팔 년, 수천 마리 닭모가지를 비틀어 장작불을 지핀 노부부, 산전수전 다 거친 백전노장
좁은 땅 한 달에 칠천 명이 지원하여 오천 명이 도태되는 전쟁터 열에 일곱은 삼개월안에 삼십육계 한다
피자 한 판에 할인가 만 구천 원 다음날 옆집은 만 삼천 원, 손익분기점이다 대박은 꿈도 꿔보지 못하고 시들었다
정신무장한 스파르타 군이라도 물량공세 페르시아 군을 막지 못하고 옆집 통닭은 삼 년 전쟁에 패하고 말았다 길 건너 돼지는 팔 년 만에 깃발 꽂는 순간 강제명도집행에 쫓겨날 신세, 권리금 족쇄 풀지 못하고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 부인은 파출부, 남자는 벽돌을 지는 날품팔이 패잔병
친구마저 떠난 자리 정글戰에서 만난 빚이란 친구가 슬그머니 와있다
「현대시학」2014.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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