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종국 시인 / 시선
수족관에 우럭 한 마리 헤엄을 친다 바닥에 바짝 엎드려 자신의 죽음을 이해하는 듯 넙치에 등을 기대어 생각의 끝을 흔들고 있다
곧 있을지 모를 피가 튀는 공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고 다섯 살 꼬마 같은 눈망울을 지느러미 삼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흐릿한 물속을 한시도 바로 보지 못하고 이마를 찡그린다 사시斜視 같은 시선으로 살아온 시간을 거꾸로 오른다 물고기로 살았을 저만의 긴 시간이 눈동자에 묻어 있다
어쩌면 가끔 내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내 회한의 시간과 지금 녀석의 시간이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헤친 물결 속 유리 같은 침묵 기울어 가는 시간만큼 잘려 나가는 속살
내가 같잖은 철학에 이를 때 녀석은 죽음에 닿는 시간
서로 다른 시선이 순간, 같은 곳에 머문다
무크『사람의 깊이』 2022년 재25호 발표
채종국 시인 / 비누의 자세
날마다 살을 발라내고 날마다 뼈를 추스른다 발라낸 육신을 빌려 두 손 모아 향기롭게 빌어보지만 오늘의 자비는 내일로 미끄러진다
표정을 읽을 수 없어 고통을 헤아릴 순 없지만 점점 더 둥글어지는 것은 네모난 생을 쉬이 건너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진 육신, 그 모서리를 둥글게 하는 힘은 타인의 손길이 아니라 자신의 부드러움이었다는 것을 닳아져 가는 입술에 거품을 물며 욕탕 바닥에서 숨죽여 울 때 알았다
기름때 묻은 내 삶의 허물을 향기로 닦지만 움켜쥔 것들을 놓기에는 손아귀 속 욕망의 악력이 세다
스스로 허물어져 가는 둥근 자세 부드러운 저 소멸은 뼈와 살을 구분할 수 없다
계간『미래시학』 2022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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