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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허청미 시인 / 선운사 동백나무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3.

허청미 시인 / 선운사 동백나무

 

 

오백살 여자가 아이를 뱃다고

노산老産의 산통이 온 산을 흔들거라고

동박새는 제 부리를 콕콕 쪼아

무성한 소문을 전송하네

 

분만을 준비하는 동백 숲 속

앙칼진 꽃샘바람이

이월의 짧은 꼬리를 뜯고 있다

늙은 임부는 진통이 와 몸을 떨고

 

언 산방에 불을 지피는

오후의 햇살

오! 눈부셔라

저 선홍의 무녀리

산방 문이 열리네

 

선운사 뒤란에 불이 붙겠네

동백꽃불 속 어디쯤

어머니 꽃등 하나 켜고 계실 것도 같은

 

환생의 씨앗 품고 모질도록

동백나무는

긴 겨울밤 깨어있었다

 

 


 

허청미 시인

경기 화성에서 출생.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 2002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으로 『꽃무늬파자마가 있는 환승역』(리토피아, 200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