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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선락 시인 / 숲, 플래시몹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8.

이선락 시인 / 숲, 플래시몹

 

 

# 장면 1

 

사람 같은 것들, 무작위로 둘러서있다 가장자리, 약간 경사진 너덧 평의 공중

햇살

 

가. 수화를 던진다 검은 옷에 하얀 꽃 듬성한, 여자

막 왼손 위에 오른손을 갖다 댄다

 

나. 빨간 재킷 빨간 모자, 양손을 아랫도리 쪽에 포갠다 눈을 15도쯤 들어, 무슨 소리가 들린 듯 구름 쪽을 바라본다

 

다. ‘나’의 눈빛이 부산스러워서일까 양손으로 입을 가린다 누군가 제 입속말을 눈치 챌까 두려워한다

눈빛을 아랫배 쪽으로 가져간다

 

라. 표정 없이 ‘나’의 반대쪽을 본다 수직, 그늘이 바닥까지 걸쳐있다

 

마.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린 채 손거울을 보는 듯, 오른손 들어 얼굴을 살짝 가린다 눈은 아래쪽으로 향했으나 눈빛이 거울 속에 머문다

 

사. 수화를 보지 못한 듯, 눈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고개를 약간 들었지만 왼팔은 가려져있다 검은 모자 속이 모호해지는 찰나

 

자. ‘가’의 왼쪽, 모르는 또는 죽은 것에 등을 기대어 공중에 무언가를 쓴다

줄무늬마스크

무늬 속 거미를 기록하는 것일까

 

슬쩍 자리를 뺀, ‘바’가 가장자리 쪽으로 사라지려한다 (나는 눈길을 거둔다)

 

아. 노란 등산복, 챙 넓은 모자를 쓴 남자

마이크를 들었으나 이 장면과는 별개다 그가 마이크를 내려놓기를 기다리는 동안

 

배경이었던 a, k, 숲으로부터 새어나와 접근하…/컷

 

# 장면 2

 

a가 슬며시 끼어든다 표정 가려져 있고, 약간 흐린 배경색 묻어난다

 

사. 생각을 뒤통수에 두고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힌다 검은 모자 속이 흔들린 듯

 

마. 손거울 안, 생각이 비친다 입을 벌리기 직전이다 어쩌면

거울 속 제 얼굴 두어 조각, 이미 삼킨 후인지도

 

라. 표정 없음, 수직, 그늘이 18도쯤 기울었다

 

다. 양손을 내려 마주잡고 ‘라’의 방향, 두려움이 다소 사라진 듯하나

마스크를 끼고 있다 눈빛, 사라졌다

 

나. 얼굴이 ‘가’의 손에 가려져있다 시선이 반대로 바뀌었다

 

가. 수화 중이다 양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손바닥을 펴고, 막 나와 하이파이브 를…

 

낯선 또는 죽은 한 사람, 그대로 서있다

 

자. 거미줄 사라지고, 무릎을 오른쪽으로 약간 비틀어 몸을 지탱한다 마스크, 코 아래 걸렸다

 

k, 막 가장자리를 통과하는 중이다

 

아. 사라지고 없다

 

배경이 약간 어두워졌다

 

# 장면 3

 

바람 분다 우리는 무덤 쪽으로 기운다

 

웹진 『시인광장』 2022년 3월호 발표​

 

 


 

이선락 시인

1957년 경북 경주에서 출생. 건국대 수의과대학 졸업. 2022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현재 동리목월 문예창직학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