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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영하 시인 / 청동거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3.

문영하 시인 / 청동거울

 

 

다뉴세문경 가는 동심원 아래 아득히

전생으로 비치는 사랑

 

일만 삼천 겁劫 우주를 돌고 돌아 나오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섭씨 40도의 열병이 회오리치던 여름

발은 둥둥 떠가고

 

마주보는 눈빛 속에 비늘 푸른 물고기 헤엄치고 있었네

그 눈 잉걸불 일어

중천으로 튀어 오르고 싶었던

 

물의 성벽 콰르르 무너지고 청동거울 깊은 속

푸른 녹으로 서 있는

 

 


 

 

문영하 시인 / 불

 

 

뼈 없는 몸이

납작 엎드린 채 온돌의 입 속으로 기어 들어간다

홀린 듯 홀린 듯 내장 깊숙이 흘러 들어가는,

어둠을 먹고 냉기를 밀어내는 낼름낼름 혓바닥 같은 불이여, 불이여

샤먼의 주문인가

시뻘건 불이 해탈한다

어두운 골목길 고래*를 벗어나 벌떡 일어서는 불이

굴뚝으로 올라가더니

초혼의 흰 옷자락인 듯 나부끼며 뜨거운 몸을 해체한다

불이 자신을 사르며 지나간 길 위에 누천년에 이르는 생의

내력이 피었다 지곤 한다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낸 고랑

 

 


 

문영하 시인

1951년 경남 남해 출생. 2015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청동거울』 『오래된 겨울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가 있음. 미네르바 시예술 아카데미상 수상. 서울시 초등교사 32년 근무 명예퇴임. 한국시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