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숙 시인 / 폐사지
설악산 깊은 골에 짐승처럼 쓰러져 누운 암자 한 채
산 넘어 간 종소리 돌아오지 않고 허공을 옮기던 목어도 사라지고 스님의 독경소리 끊긴 지 오래다
수만 근 적막이 담장을 치고 있다
산문은 하늘로 열려 있어 밤이면 달빛이 내려오고 별들은 마당을 쓸고 간다
밤이 깊을수록 진해지는 솔향
산 귀퉁이 어디쯤 너구리와 고라니와 노루와 꿩 다람쥐가 달빛을 덮고 잠들어 있을 것이다
새와 벌레 울음소리가 고요해진 산은 나뭇잎 하나 떨어지자 부스스 깨어난다
최혜숙 시인 / 어느 몽상가의 등불
침묵이여 내 안에서 타는 빛이여 나를 살게 하는 힘이여 내 영혼의 깊은 잠을 깨워다오
침묵이여 내 혼을 관통하는 등불이여 날개 치며 일어나는 불꽃이여 내 생을 떨게 하는 힘이여
침묵이여 내 혀끝에서 지워지는 신의 선물이여 날카로운 사각의 모퉁이에서 흔들리는 기억이여 어둠 저편에서 머뭇거리는 이미지의 편린이여
침묵이여 강물 위로 떠다니는 노래여 갈대 사이에서 흐느끼는 바람의 변주곡이여 내 몽상의 근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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