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배 시인 / 봉지
군대 간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차 속을 정리하는데 과자 빈 봉지가 눈에 든다 아들이 먹고 버린 <오징어 땅콩> 빈 봉지, 차마 버리지 못해 꼬깃꼬깃 딱지를 접어서 안주머니에 넣고 있는 내 꼴이 마치 빈 봉지 같다
김상배 시인 / 아무것도 아닌
저 안개가 걷힐 때까지, 그대들은 그 동안 안개가 이루어놓은 신비의 성문城門 앞에서 서성거리게 되겠지만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길고양이 같은, 성문 안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것들을 막연하게 감싸고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안개여.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의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위한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여. 저 안개가 걷힐 때까지, 우리는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 아니라 후배 조모상喪 부의금 액수에 관한 명상 같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궁리하고 있겠지. 오, 어쩔 뻔 하였느냐, 저 안개가 아니었다면. 정오의 햇살로도 결코 걷어낼 수 없는, 아무것도 아닌 내 심중心中의 성문을 굳게 지키고 있는 이 무형無形의 안개와 안개 속의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여.
*김원일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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