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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완 시인 / 사월의 눈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6.

김완 시인 / 사월의 눈들

 

 

무등산 새인봉에 눈이 쌓여 있다

지난여름 태풍에 넘어진 소나무

사이사이 피어 있는

진달래의 얼굴 창백하다

그대 두견새 피울음의 꽃이여

외로 필 때 수줍어도

무리 지으면 왜 붉게 출렁이는가

쌓인 눈 속 핏빛 상처 되살아난다

서민들 곰비임비 목숨 끊고

남북 갈등 무장 커져 가는

다산이 눈감은 이 사월의 봄날

하양과 분홍 사이 겨레의 피 흐르는데

너를 쳐다보는 사월의 눈들 애처롭다

 

 


 

 

김완 시인 / 너덜겅 편지 1

 

 

물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청량한

겨울 너덜겅에서 편지를 쓴다

일만 마리의 물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크고 작은 돌부더기 위에 하얀 눈 쌓여 있다

새들이 눈 위에 새긴 경전들

섣달 된 바람은 알고 있을까

아무도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

드넓은 돌 바다를 바라보며

멀리 떠난 그대의 안부를 묻는다

몸 성히 잘 있는지 꿈은 상하지 않았는지

바위에 내린 이슬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너 덜 강 근처 규봉암의 감로수

그대와 더불어 마실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날마다 출렁이는 생의 바다

그 파도 속에 우주의 이치 담겨 있다

너덜겅 군데군데 숨어 있는

알 수 없는 생각의 깊이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울렁임이 있다

바람 불고 눈 내리는 한겨울 오후

그대에게 가는 길 아득한데

수천만 년 단단한 그리움이 흩어져

크고 작은 돌들로 흘러내리는 곳에서

돌과 나의 눈물소리를 전한다

 

 


 

김완(金完) 시인

1957년 광주에서 출생. 전남대 의과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의학박사). 2009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리운 풍경에는 원근법이 없다』 『너덜겅 편지』 『바닷속에는 별들이 산다』가 있음.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 시낭송회 비타포엠 이사. 광주보훈병원 심장혈관센터장이며 '늘푸른아카시아', '진진시' 동인. 2018년 제4회 송수권 시문학상 남도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