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빈 시인 / 줄탁啐啄, 위를 걷다
액자 유리가 깨지자 야크가 이동한다 황량한 이쪽에서 초원이 있는 저쪽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풍경은 바람 따라 흔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히말라야 고원 기차 길 따라 나도 머리카락 휘날리며 걸어야 하는 것이다
거울에 비쳐지던 기억들을 버리고 스스로 눈 덮인 산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나는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등나무 꼬투리가 길 한 쪽을 쪼자 열매가 굴러간다 도로 이쪽에서 흙이 있는 저쪽으로
굴러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은 황무지에 틈을 벌리며 흘러야 하는 것이다
나무 위로 흐르는 지난 계절의 꽃향기 따라 나도 허공 한 쪽 디디어야 하는 것이다
언어 흉내 내며 살았던 유아기의 거울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을 걷는다
야크가 이동하자 액자의 유리가 깨진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영연 시인 / 풀의 시간 외 1편 (0) | 2022.08.16 |
---|---|
박주용 시인 / 나뭇잎 신발 외 1편 (0) | 2022.08.16 |
손종호 시인 / 그대의 벽지(僻地) 외 1편 (0) | 2022.08.16 |
김완 시인 / 사월의 눈들 외 1편 (0) | 2022.08.16 |
박소진 시인 / 정동길 외 2편 (0) | 2022.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