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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종빈 시인 / 줄탁啐啄, 위를 걷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6.

박종빈 시인 / 줄탁啐啄, 위를 걷다

 

 

액자 유리가 깨지자

야크가 이동한다

황량한 이쪽에서 초원이 있는 저쪽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풍경은 바람 따라 흔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히말라야 고원

기차 길 따라

나도 머리카락 휘날리며 걸어야 하는 것이다

 

거울에 비쳐지던 기억들을 버리고

스스로 눈 덮인 산으로

향하여 가는 것이다

 

나는 길을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등나무 꼬투리가 길 한 쪽을 쪼자

열매가 굴러간다

도로 이쪽에서 흙이 있는 저쪽으로

 

굴러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은 황무지에 틈을 벌리며

흘러야 하는 것이다

 

나무 위로 흐르는

지난 계절의 꽃향기 따라

나도 허공 한 쪽 디디어야 하는 것이다

 

언어 흉내 내며 살았던

유아기의 거울을 밟고

지나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길을 걷는다

 

야크가 이동하자

액자의 유리가 깨진다

 

 


 

박종빈 시인

1963년 대전 출생. 대전대 문예창작학과 석사졸업. 1993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4년 <시와상상> 시작 활동. 시집으로 『모짜르트의 변명』이 있음. 시와상상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