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신영연 시인 / 풀의 시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8. 16.

신영연 시인 / 풀의 시간

 

 

아침의 기후로 날아든 영혼,

마중하는 자세로 비가 내립니다

 

여기가 어디던가

 

낯익은 흙의 온기에

풀은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입문을 열어 푸르름을 보여줍니다

 

이른 아침 몸을 낮추고 다가서면

잠 깨어 기지개 켜는 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햇살의 어부바에 재롱을 부리고

바람의 술래에 균형을 잡다가도

투박한 손끝에서 칭얼거리면

어느새 땅은 촉촉한 눈빛으로 젖을 물립니다

 

누군가는 새 옷을 갈아입고 길을 떠나는데

 

​풀은 온전히 풀의 시간을 살아내고만 있습니다

 

 


 

​신영연 시인 / 유리병은 입술을 닫고

 

월미도 향한 바닷길

부르다 목 메인 그대의 끝자락, 갈매기가 날아오네

 

입을 닫았네 귀도 닫았네 둥둥 몸은 뜨기 시작했네 쏟아지는 말들을 혀끝으로 감싸 안고 물의 길로 들어서네

 

어둠이 내게 길을 물었으나 입을 열 수 없네

파도에 밀쳐 부딪는 바위,

첫눈에 반했다는 물고기의 반응에는 잠시 눈망울이 흔들렸네

달빛은 손을 내밀어 잡으라 했으나 왕왕 길을 잃기도 하였다네

 

물길로 끌리는지 물길 되어 흐르는지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한 듯 흘렀네 한

세월은 건너야 할 많은 이야기가 바닷 속으로 던져졌네

 

유리병에 담긴 편지 한 장 입에 물고 그대 향해 출발한지, 백년이네

 

시집『바위눈』(시와정신, 2020)

 

 


 

신영연 시인

충남 부여 출생. 2008년 계간 《시에》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안녕이 저만치 걸어가네』가 있음. 한남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현재 한남대학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