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진 시인 / 정동길
첫서리가 사라졌다 눈빛마다 붉은 거품을 토하고 그녀의 발자국을 마주보고 굴렀다 내 발자국도 따라 울었다 초록 돌멩이끼리 짓이겨 껴안고 그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새끼손가락 하나 들어갈 것 같은 세모난 고리 같다 거기에 내 심장을 껴 맞춰본다
걷는 외로움에 길 틈틈이 핏빛 그리움을 묻어 놨는데 가을이구나, 그녀의 낙엽이 하강하고 문득 끼워 넣은 심장이 잘 있나 궁금해져 다시 담들의 돌멩이로 갔다 퉁퉁 불어터진 고깃덩어리가 입이 달려 정신없이 뜀박질한다
어느새 차가운 낙엽 위로 하얀 발자국
박소진 시인 / 바람을 부르는 소리
허공의 승무가 시작된다 바람결이 그네를 띄우면 구경 온 여인네 치마폭에 아들을 잃은 어미의 노래가 스민다 현을 뜯고 울음을 토하라
사냥하라 노루의 잘려진 발톱은 새총에 맞아서다 그녀의 쓸개를 피처럼 마시고
숲의 정령을 부르는 소리 붉은 영산홍을 몇 개 즈려 입술에 묻혀라 올빼미 부리처럼 날카롭게 뜯어라
뱀은 가라 제 등지로 돌아가 똬리를 틀어라 네 놈의 성기 끝에서 땀을 마시고 생명을 내뿜고
박소진 시인 / 성북동 불빛
빛에 고개를 젖혔다 자정도 되기 전인데 달이 태양처럼 붉다 노란 눈물 뿜고 투미한 내 머리 위로 하산한다
죄 많아 오늘 같은 부름에 밤이 고개를 숙여 오면 별도 떨군 제 빛 처절한 달 노래
창을 두고 너를 본다 제집 밝히는 가로등 여러 개 그중 붉은 옥빛 뿜으며 달빛에 눈이 선하다 언덕 넘어와 이마 비추고
푸른 달 시린 노래 머리 위 눈물샘 이고 간다 빛 따라 가야 할 길에 먼 눈 보이지 않는 길
여기 한밤 진흙 발 허공에 딛고 초조한 숨소리 서글피 아껴두고 갈 곳 어딘가
오래된 달빛이 포근히 언덕을 메웠다 보랏빛 수국 이파리 파르르 제 몸 떨고 한 잎 떨며 찬란히 펼쳐지는 하얀 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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