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주 시인 / 와즉영窪卽盈'
나는 오목한 것들을 사랑한다
아기 이유식 떠먹이는 앙증맞은 숟가락 제비 새끼 빼곡히 들어앉은 둥지 퇴근길 허위허위 돌아온 아버지의 허기 채워줄 밥공기 봄날 묵언수행 중인 비구니 선방의 禪향기 오롯이 담긴 茶器 여름비 내리는 처마 밑 낙숫물 묵묵히 받아내는 양동이 가을 햇살 온몸으로 견뎌낸 빨간 고추 가득 들어앉아 있는 광주리 겨울밤 별빛 담긴 정화수 그릇
오목해야 찰 수 있다
마음 그릇 오목하게 만들어 진한 사랑 찰방찰방 담고 싶다
*노자의 '와즉영窪卽盈'
신형주 시인 / 얼룩
백화점에서 쇼핑 하는데 디스플레이 된 노란 니트 한 눈에 나를 사로잡는다 눈치 빠른 점원 다가오더니 한번 입어 보세요 잘 어울리시겠어요
자석에 달라붙듯 옷을 받아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가는데 점원 아가씨 내 뒤통수에 대고 친절한 협박을 한다 화운데이션이나 립스틱 묻지 않게 조심하세요
니트에 화장품 묻을까 조심조심 입어보다 문득,
그냥 입어만 보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다 내 몸에 걸쳤을 때 근사하게 어울릴 것만 같아서 느낌에 잘 어울릴 것만 같아서
얼룩을 남기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다 제 자리에 두고 온 사람
보는 것하고 좀 다르네요 점원에게 옷을 돌려주며 서둘러 매장을 빠져 나온다
-<시인 정신> 2015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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