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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황미현 시인 / 다랑어 도마 씨(氏)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2.

황미현 시인 / 다랑어 도마 씨(氏)

 

 

오늘의 도마는 어떤 맛이 날까

 

움푹한 다랑어 한 마리 누워 있는 도마, 부위별로 순위가 정해진 세모

난 입맛, 눈 가장자리 살 여섯 점

 

어슷썰기를 했는데 왜 분지 같은 맛이 날까

그렇다면 오늘의 메인은 분지의 맛

 

도마 氏는 꼬리도 아가미도 없는 물고기, 빗살무늬 비늘, 진홍의 난도(亂刀)로 숨 쉬고 칼의 호흡법으로 맛을 낸다 사선으로 누운 뼈들이 도마 氏의 체온을 따라 패는 밤,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붉은 뱃살로 부푼다

 

북쪽 찬 바다에 엉겨 붙은 최상의 입맛은

입 안의 해안선을 따라 헤엄친다

미간을 따라 범선이 항해하고

바람은 돛을 달고 날쌘 비린내를 풍긴다

 

기분 좋은 손님을 기억하는 도마氏 도마가 춤출 땐 그 때가 아닐까?

가장 맛있는 피 맛을 골라내는 다랑어 도마 氏의 감정

 

분지에 뼈가 눕는 지도를 그리며 우물처럼 깊어지는 도마 氏 안과 밖,

살아야 할 모두에게는 빗살무늬 칼의 흔적이 남는 걸까

 

칼이 없는 날

도마 氏는 가끔 돌아눕기도 한다

 

-시집 『이렇게 가벼운 주머니』(천년의시작, 2022) 중에서

 

 


 

 

황미현 시인 / 해바라기 육아법

 

 

해바라기는 자기 얼굴에

씨앗을 슬어 놓는다.

꼬물거리지도 않는, 덜 여문 것들을

까맣게 익을 때까지 얼굴을 숙이며 여물게 한다.

늘그막의 엄마는 머리가 아프다고

자주 고개를 숙이곤 했다.

주근깨가 씨앗처럼 박힌 얼굴을 가끔 찡그리곤 했다.

여전히 까만 씨앗들을 품고

등에 알을 지고 다니는 피파개구리처럼

얼굴에 빼곡히 근심을 달고 다녔다.

생각해보면 얼굴이 얼굴을 키웠다.

울고 웃고 찡그리거나 근심스런 일들은

모두 얼굴의 몫이었다.

얼굴 밖의 일들이 미간을 늘렸다.

내가 실망한 얼굴도 엄마의 얼굴

내가 웃었던 얼굴도 엄마의 얼굴이었다.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자랐다.

이파리들과 꽃술이 다 마르는 동안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빽빽한 씨앗

염려와 근심들, 내 얼굴에도

어느새 씨앗들이 가득하다.

 

-시집 『이렇게 가벼운 주머니』(천년의시작, 2022) 중에서

 

 


 

황미현 시인

명지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19년 《시작》 신인상 등단. 시집으로 『이렇게 가벼운 주머니』(천년의시작, 2022)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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