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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문덕수 시인 / 우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2.

문덕수 시인 / 우연

 

 

내가 너의 곁에 있듯이

팔각의 성냥갑 곁에

반쯤 찬 장미빛 양주간.

파란 고색의 담배연기만이 슬리는

수색동 셋방 한 구석에

이 희승 선생의 국어대사전이 무료하고

그 위에 은빛 라이타

먼먼 그리움의 물굽이에 밀려서

내가 너의 곁에 있듯이,

하늘의 뱃 속까지 비칠 듯한 창가에

선지피를 뿜는 칸나가 피어나듯이

팔각의 성냥갑 곁에

장미빛 양주잔.

 

 


 

 

문덕수 시인 / 금관

 

 

아침나절에 소나기 개다

갈릴리 호수를 걸어오는 예수의 맨발가락이 보이고

보리수 밑의 싯다르타의 알몸 가부좌 위로

툭 떨어지는 노란 망고 열매가 아프다

 

북한산 양로봉 턱밑 푸른 능선을 오르는

한 여류시인의 등산모 차양에

오전의 다이아몬드 빛 부스러기들이 내려와 박히더니

금관이다

 

 


 

문덕수(文德守) 시인<1928-2020>

1928년 경상남도 함안 출생. 호는 심산(心山), 청태(靑笞). 홍익대학교 국문과 및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 1964 현대문학상?1978 현대시인상, 1981년 아카데미 학술상, 1985 펜문학상 수상. 시집: {황홀, {선(線)·공간(空間)}, {새벽바다}, {영원한 꽃밭}, {살아남은 우리들만이 다시 6월을 맞아}, {다리놓기}(, {문덕수시선}, {조금씩 줄이면서}, {그대, 말씀의 안개} 등. 홍익대학교 교수. 2020.3.13 타계(향년 9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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