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덕수 시인 / 우연
내가 너의 곁에 있듯이 팔각의 성냥갑 곁에 반쯤 찬 장미빛 양주간. 파란 고색의 담배연기만이 슬리는 수색동 셋방 한 구석에 이 희승 선생의 국어대사전이 무료하고 그 위에 은빛 라이타 먼먼 그리움의 물굽이에 밀려서 내가 너의 곁에 있듯이, 하늘의 뱃 속까지 비칠 듯한 창가에 선지피를 뿜는 칸나가 피어나듯이 팔각의 성냥갑 곁에 장미빛 양주잔.
문덕수 시인 / 금관
아침나절에 소나기 개다 갈릴리 호수를 걸어오는 예수의 맨발가락이 보이고 보리수 밑의 싯다르타의 알몸 가부좌 위로 툭 떨어지는 노란 망고 열매가 아프다
북한산 양로봉 턱밑 푸른 능선을 오르는 한 여류시인의 등산모 차양에 오전의 다이아몬드 빛 부스러기들이 내려와 박히더니 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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