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시인 / 가을 편지
나의 가을밭은 올해도 비었습니다.
하지만 빈 곡식단을 묶듯 빈 마음을 묶어 봅니다.
묶이지 않는 이 일을 어쩌겠습니까마는,
산이 높을수록 가을은 먼저 깃들어 동해는 어린아이처럼 칭얼대고
일월은 또 저렇듯 높이 떠올라 나는 빈 손으로 하늘을 바라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필경 올 것은 와 어스름을 밟고 유지매미가 쓰르락거리면
그렇군요, 나는 다만 한 줄의 가을 편지를 띄우렵니다.
최명길 시인 / 소를 찾으며
소를 찾습니다. 세상의 눈물을 머금은 소를 찾습니다. 내 안에서 잃은 소를 찾아 헤맵니다. 소여, 알몸뚱어리 온몸 다하여 소를 부릅니다. 소여, 소여, 강둑에서 소를 부릅니다. 하늘 우러러 소를 부릅니다. 돌아와 거친 산골짜기를 따라 소를 찾아 나섭니다. 어느 산천에 고삐 풀고 한가로이 풀 뜯을 소, 그 눈부심을 찾아 나섭니다. 엉겅퀴꽃 핀 들을 지나 늙은 불가사리가 사는 바다를 지나 이 세상 진실을 보는 이를 찾습니다. 내 삶을 길바닥에 버린 채 깊은 밤에 홀로 깨어 소를 부릅니다. 눈을 씻으며 아득히 먼 소 울음 소리 들으며 그 울림 들으며 헤매고 또 헤맵니다. 나는 풀 그림자, 산을 떠난 소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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