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창수 시인 / 차 한 잔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5.

이창수 시인 / 차 한 잔

 

 

눈에는 연둣빛 풀밭

코에는 은은한 향기

귀에는 쪼로롱 물의 노래

손에는 정다운 찻잔

입에는 새봄 맛 담뿍

마음은 마음은

비 갠 하늘 무지개

 

 


 

 

이창수 시인 / 요세미티

 

 

머나먼 옛날

하늘 문이 열리고 비바람 천둥 번개 몰아 칠 때

천지 개벽하는 창조주의 크신 음성에

거대한 땅덩어리는 놀라 요동치며 깨어지고 갈라져

 

여기 저기 높은 산, 험준한 계곡,

굽이치는 산세가 되었더라

 

구름에 닿은 깎아지른 돌산들에서는

여기 저기 폭포수 뿌려지고

깊은 계곡 하늘에서 흐르는 물들은

굽이굽이 강줄기 이루어

겨울엔 온 천지 하얀 눈꽃 속에

주렁주렁 긴 고드름 자랑하고

여름엔 깊은 계곡 짙푸른 숲속에서

시원한 물바람 소리 들렸는데

이름하여 요세미티 머세드 강이라 하였더라

아아 거대한 대자연의 웅장함이여

장엄하고도 무궁한 화려함이여

 

우리들의 선조 인디언들은

험준한 계곡, 돌산으로 둘러싸인

이 천혜의 절경, 천혜의 요새 속에서

하늘 보고, 구름 보고, 폭포수 보고

강물에 미역 감으며

깊은 계곡 숲속에서 움막 짓고 옥수수 심으며

평화롭게 걱정 없이 살았는데

 

또다시 천둥 번개 치던 어느 날

말 타고 딱총 든 한 무리의 무뢰한들이 나타나더니

평화롭던 온 마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대대로 살아 온 검은 머리 날리던 사람들을

이유 없이 닥치는 대로 살육하며 쫓아 버렸구나

아아 흩어져버린 꿈들이여 아픔의 세월들이여

온 몸과 마음으로 기대고 응석부렸던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보금자리를 쫓겨난 그들은

또다시 황량한 사막을 정처 없이 헤매었더라

 

산아 산아 큰 산아 유유히 흐르는 강물들아

너희는 알고 있지 태곳적부터의 비밀들을

하늘 아래, 구름 속에 깎아지른 거대한 돌산 속에

인디언들의 발자국과 한숨소리를

그들의 애타는 비명과 한스러운 눈길들을

온갖 인간의 형상에 짓밟혀 온 너의 아픔에도

세월의 증인 요세미티

너는 알고 있지 그들이 너의 삶이었음을

 

 


 

이창수 시인

1970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2000년 《시안》으로 등단. 2004년 대산창작지원금 수혜. 현재 광주대·중앙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