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허민 시인 / 사람들은 즐겁다*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29.

허민 시인 / 사람들은 즐겁다*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 반달을 바라본 어젯밤이

오늘에서야 아픈 까닭

어둠에 가려졌던 나머지 부분이

실패하고 만 지금이라는 생각 탓일까

위로를 받으면 오히려

젖은 감정들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세상이 어둡다는 걸 그렇게 밤하늘의 실눈을 통해 배우면

어린 날 보았던 반쪽의 동화가 생각나

천천히 세상을 굴러가기 위해 간신히 찾은 반쪽을 부러 버렸다는 이야기

위대한 신은 짐승의 이빨을 세운 채

내 아름다운 금빛 반지의 절반을 깨물어 깊은 우주의 연못으로 던져버렸다고

나는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 편지 속에 써 넣는 것이다

그리하여 빈 의자는 떠나간 의자가 아니라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고요일 것이라고

애써 너에게 웃음 지었지

그렇게 모든 배웅이 끝나면

혼자 남아 비워진 접시들을 치우고

버려진 음식들을 한 번 더 버린 후에

그 빈 의자에 스스로 앉아보게 되는 것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기다리던 건 무엇이었을까

창밖에 조금씩 차오르는 달빛의 파도처럼

머물렀다 사라지는 것들, 사라졌다 되돌아오는 것들을 생각하며

빈 의자에 앉아 빈 술잔을 언제나 절반만 채워 놓는 것이다

 

* 루시드폴

 

계간 시산맥2017년 여름호 발표

 

 


 

허민(許旻) 시인

1983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4년 웹진 시인광장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누군가을 위한 문장(시산맥, 2022)이 있음. 2022년 제2회 시산맥 창작지원금 수혜. 웹진 시인광장편집위원 역임. 현재 인천 동산고 국어교사.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