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강우 시인 / 먼지의 계보 마루를 닦다 보면 먼지 아닌 것들이 오해받는 경우도 있다 아무리 문질러도 겉장이 읽히지 않는 나뭇결과 다른 형태소를 만날 때가 있다 곁방살이의 눈치처럼 찐득하게 붙어 있는, 한때는 일거수일투족 달콤한 풍미를 발하던 때깔이 거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먼지의 본산을 이루었다 먼지가 먼지를 불러 더 큰 먼지를 쌓는 건 생로병사의 이름으로 증빙된 가계의 내력에도 소상히 나와 있지만 제 얼굴을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오늘도 분분한 의견과 고요한 탄식이 있다 길을 낸다는 이유만으로 앞의 것들을 모질게 닦은 적이 많다 지금 당신이 들여다보는 먼지를 뒤집어 쓴 것들 내가 아니면 모두 먼지가 되어야 하는 것들 먼지가 길을 증명해 보인다고 항변하는 것들 대개는 밖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더러 안에서 부터 먼지가 되는 것들도 있다 먼지의 실록은 사계절 변천은 물론 꽃과 별, 마천루의 불야성 도 먼지로 필사해 쌓아두는 습성이 있다 승자와 패자의 이름도 마찬가지. 실은 인간이야말로 먼지가 가장 선호하는 개체이다 생각하면 세탁소를 가진 종족은 인간뿐이다 걸레질도 때가 있고 순서가 있음을, 당신과 나는 기압과 기압 사이 혹독한 바람을 싫어 하는 같은 항렬을 가지고 있다. 지금 여기, 먼지로 해체되기 전의 큰 먼지덩이가 소복한 가루의 서사를 읽느라 골똘하다 -제 15회 수주문학 수상집에서 심강우 시인 / 아픈 사랑 붉은 백일홍 피었다 날이 흐려도 눈에 띈다 그런데 백일홍은 왜 피었나 피지 않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담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사랑을 한다 멀리서 봐도 위태롭다 그런 사랑을 왜 하나 사랑을 하지 않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지 않고 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 『공정한시인의사회』 (2022, 1월호), 공시사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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