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시인 / 사람들은 즐겁다* 아무도 없는 옥상에 올라 반달을 바라본 어젯밤이 오늘에서야 아픈 까닭 어둠에 가려졌던 나머지 부분이 실패하고 만 지금이라는 생각 탓일까 위로를 받으면 오히려 젖은 감정들이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세상이 어둡다는 걸 그렇게 밤하늘의 실눈을 통해 배우면 어린 날 보았던 반쪽의 동화가 생각나 천천히 세상을 굴러가기 위해 간신히 찾은 반쪽을 부러 버렸다는 이야기 위대한 신은 짐승의 이빨을 세운 채 내 아름다운 금빛 반지의 절반을 깨물어 깊은 우주의 연못으로 던져버렸다고 나는 그렇게 의미를 만들어 편지 속에 써 넣는 것이다 그리하여 빈 의자는 떠나간 의자가 아니라 누군가 오길 기다리는 고요일 것이라고 애써 너에게 웃음 지었지 그렇게 모든 배웅이 끝나면 혼자 남아 비워진 접시들을 치우고 버려진 음식들을 한 번 더 버린 후에 그 빈 의자에 스스로 앉아보게 되는 것이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기다리던 건 무엇이었을까 창밖에 조금씩 차오르는 달빛의 파도처럼 머물렀다 사라지는 것들, 사라졌다 되돌아오는 것들을 생각하며 빈 의자에 앉아 빈 술잔을 언제나 절반만 채워 놓는 것이다 * 루시드폴 계간 『시산맥』 2017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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