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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혜미 시인 / 겨울 가지처럼

by 파스칼바이런 2022. 9. 30.

이혜미 시인 / 겨울 가지처럼

 

 

안으로 흘러들어

기어이 고였다

 

온통 멍으로 출렁이던 몸

두려움에 독주머니를 가득 부풀린

괴이하고 작은 짐승

 

가지꽃이 많이 피면 가문다더니

손가락으로 열매를 가리키면

수치심에 겨워 낙과한다니

 

몸속에 위독한 가지들을 매달고

주렁주렁 걷는 사람에게

고결은 얼마나 큰 사치인가

 

숨기려해도 넘쳐 맺히는

시퍼런 한때가 있어서

 

찢어진 가지마다 심장이 따라붙어

우리는 모서리를 길들이기로 했다

 

한 바구니 두 바구니 수북이 따서 모은

열매들의 참담을 생각하면

부푸는 속내와 어두운 낯빛 사이에

물혹 같은 곤란함이 도사리는데

 

겨울 가지는 삶아놓으면 더 푸르러지고

푸르다는 건 내부에 멍이 깊은 병증이라

피부 밑으로 서서히 들이치는 겨울

가지의 색

 

월간 『​현대시20198월호.발표

 

 


 

이혜미(李慧美) 시인

1987년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2006중앙신인문학상에 시부문에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창비, 2011)뜻밖의 바닐라(문학과지성사, 2016),빛의 자격을 얻어(문학과지성사, 2021)가 있음.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15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수상. 10회 고양행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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