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왕노 시인 / 아무르 여자
아무르 강가 그 여자 알기는 알아 속이 톨 밤처럼 단단하나 사랑을 할 때 풀 고갱이처럼 부드러운 여자 삼단머리 아무르 강물에 감으며 자작나무 수피 같은 종아리를 보여주는 여자 아무르 강보다 때로는 더 출렁이는 여자 조상의 고향이 반도의 문경이라는 여자 독립투사 할아버지를 가져 자랑스럽다는 여자 문경새재 넘으며 소쩍새로 울고 싶다는 여자 구절초로 피어 가을 햇살로 마디마디 익고 싶다는 여자 내 늦고 가난한 꿈은 차라리 아무르 표범 되어 아무르 여자 집 곁의 숲으로 드나들며 아무르 여자와 사는 것 밤마다 아무르, 아무르 하면 내 상처 아물지만 아무르, 아무르는 그 여자와 만나자는 신호 나자리노 영화처럼 저주를 받은 듯 아무르 표범으로 변한 아무르 여자 함께 아무르 강을 건너 별빛으로 털을 말리며 그 깊고 격렬하다는 아무르 사랑 아무르 사랑으로 가면 짧기만 할 아무르 밤 아무르 강가 그 여자 알아 김치를 잘 담그고 손맛 좋은 여자 콩나물시루에 밤새 물을 줄줄 아는 여자 장대 끝에 서대를 매달아 꾸덕꾸덕 맛들이듯 아득한 하늘에 그리움을 매달 줄 아는 여자 한 땀 한 땀 뜯어진 것을 깁는 여자 공기놀이도 고무줄놀이도 아는 여자 물동이를 일줄 아는 아무르, 아무르 여자 아무르 새도 하늘도 풀꽃도 물푸레나무도 반도의 것이라고 아무르가 우리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아무르 여자 한 남자를 위해 은장도 가슴에 품고 사는 여자 때로는 여 전사같이 단호하나 아름다운 여자 아무르 살자, 아무르 살자, 제발 아무르 살자며 나를 노래하게 만드는 여자 나를 조금 아프게 하는 여자, 눈물 흘리면 아무르 표범의 혀로 눈물을 핥아주는 여자 비너스나 양귀비보다 더 아름다운 아무르 여자 나를 위해 밥 뜸을 잘 들일 줄 아는 여자 오래 잊고 있어도 아무르 공기와 비로 싱싱한 여자 삼단머리 아무르 강에 감으며 강물보다 깊고 넓게 기다림을 키우는 여자, 아무르 여자 말로만 안다, 안다 하지 말고 아무르 강 그 여자 정말 알아, 우리가 잊고 있는 여자 우리의 가슴에 묻어놓은 사랑의 불씨를 조용히 살릴 줄 아는 여자 주저 앉아버린 청춘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여자 우리가 잃어버린 모성을 가진 여자 아무르, 아무르 하며 죄가 되더라도 그 여자 깊이 정박의 닻 내리고 싶은 내 심정도 알아 언젠가 찾아갈 내 밤길 밝히려 밤마다 아무르 하늘에 별 농사짓는 그 여자의 부드러운 손끝은 알아 먼 반도를 향해 정갈하게 앉아 학을 수놓는 아무르, 아무르 그 여자, 그 여자를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김왕노 시인 / 저 유리창 성에꽃
추울수록 환하게 피는 너는 어느 이역에서 늦어서 겨울에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기에 창밖을 내다보느냐. 한 때 졸본이나 서역 어느 나라에서 만났다가 서둘러 온다고 두고 온 사람을 기다리는가. 추울수록 환하게 피어 창밖을 보는 창백한 너를 바라보는 가슴에 살얼음 번진다.
하나 너만 피어 이 밤을 견디라는 것이 아니다. 아득한 곳에서 너를 응시하는 별이 보이느냐. 은하수는 캄캄할수록 빛나는 너로 인해 캄캄할수록 나도 발광체가 되어 이 겨울 밤길 가는 누군가의 발끝을 지켜 주리라 생각한다.
눈부시구나. 저 유리창에 성에꽃, 겨울에 유일하게 피어나는 꽃 꽃에 중독된 사람은 너라도 피므로 금단증세가 사라진다. 약간의 온기만 느껴져도 쉽게 자취를 감추므로 더욱 귀한 성에꽃 너를 문신처럼 내 가슴에 새기므로 네 빛으로 지워지는 내 가슴에 겁 없이 펼쳐진 검은 문장, 숱한 어두운 탄식과 불구의 구절들
오오, 추울수록 끝없이 피는 모순의 꽃이여, 모반의 꽃이여 굴복을 모르는 꽃이여. 너를 닮아 내게도 피는 겨울 꿈이 있다. 새벽언저리에서 지는 가장 순결한 꽃이여 네 기원이 겨울사무실을 가득 채운 누군가의 입김이고 끓어오르던 커피포터서 피어난 김일 수 있으나 영하의 어둠도 덮치지 못하는 눈부신 겨울밤의 꽃이여. 사나운 겨울바람을 달래는 차가운 꽃이여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0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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