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익진 시인 / 불빛 사냥
어둠을 설치하라 밤을 준비하라
빛이 도망간다, 불빛에 환장하는 사냥개들이여 잡아라, 추적하라, 빛의 속도보다 더 빨라라
빛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 그래야만 불빛을 대대로 물려줄 수 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영원히 빛날 수 있다
비밀의 유출을 막아야 하는 것처럼 포획한 불빛을 가둬라, 저곳은 빛이 가득한 나라이다
유령이 뿜어대는 불빛, 빛들의 무대, 다음 역으로 향하는 불빛의 기나긴 그림자
순례자의 촛불 행렬, 강물에 떠내려가는 유등도 건져 올려야 한다
해외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빛의 축제, 불빛 장식들이 온 도시를 뒤덮고
사람들의 이마가 색색의 불빛으로 물들어 갔지요 빛나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연인들
빛의 또 다른 종족들. 저들에게도 올가미를 씌워야겠어
빛의 가죽을 벗겨라 빛의 뼈대를 추려라
끝까지 야성을 잃지 않고 떠도는 빛의 영혼들이여
정익진 시인 / 잉어 대회
1. 잉어들의 움직임은 구름과 같이 종잡을 수 없습니다 무슨 충격을 받아 저렇게 비늘이 돋아났을까 바람처럼 저 잉어들도 출신을 알 수 없습니다 잉어 도감에도 발견할 수 없는 종족입니다 몸통을 휘저으며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뿔뿔이 흩어집니다 신이 찾을 수 없는 그 곳으로 몇몇은 환희의 표정을 지으며 꽃잎을 흩날립니다 엽서를 띄우거나 혹은 은둔자의 분위기를 풍기며 모자를 벗어던지고 옷자락을 나부끼며 안갯속으로 멀어져 갑니다 잉어의 입에서 토끼가 튀어나온다든지 신청옹과 함께 날아갔다든지 하는 따위의 소문은 사실입니다 도 다른 의상을 갈아입고 등장할 것입니다 숲 속 작은 벌레들이나 물속의 미생물 그리고 이끼를 뜯어먹으며 수면 위로 떨어지는 이슬과 나뭇잎의 파문을 느끼며 자유스럽고 평화롭게 물속을 유영하는 것은 명상이 깊어진 사람이 물결무늬 코트를 입고 신신령 같은 손짓으로 새들을 불러 모으며 잎사귀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숲 속을 거니는 일입니다 한 때 잉어들도 만신창이였죠 비늘 떨어진 자리에 진물이 배어 나오고 지느러미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렀습니다 거칠고 어두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영영 돌아올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출발해서 어디로 헤엄쳐 가는 것일까요 2. 주황색 잉어가 서른 여섯 마리 하얀 이엉 여든 다서 마리 하양 바탕에 붉은색 무의 잉어 아흔세 마리 그들이 노니는 곳으로 천국 출신의 무지갯빛 잉어 떼 수천 마리가 몰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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