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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만영 시인 / H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0.

이만영 시인 / H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꽉 막힌 내 표정을

하수관처럼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어제는 코를 막고 샤워했어요

코를 아무리 풀어도

스며드는 악취는 쥐어짤 수 없네요

뺨에는 쓸모없는 근육만 생겨요

새로운 코가 생겼으면 해요

어디든지 달릴 수 있는 혈관이

놓였으면 해요

엘리베이터에 붙은 전단지를 봤어요

요즘도 막힌 수도관이 많은가 봐요

나는 꿈꾸느라 밤을 새워요 아니

밤을 새우려고 꿈을 꿔요

 

언제 죽을지 몰라 유서를 써 봤어요

나에게 보내는 메일함으로

죽음은 꺼진 텔레비전 화면 같은 것

정지했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모니터처럼

   안녕하세요 누수 탐지 연구소 소장님

​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 오피스텔 302호에 살고

       어딘가가 막혀 나날이 뚱뚱해지는 중입니다

여러 업체에 수리를 요청해 보았지만

코끝만 간질간질 아무도 연락하지 않네요

 

어딘가 퉁퉁 부어 오르고

속이 뻥 뚫리면

고래처럼 좋아할 거예요

창밖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칠 거예요

​알파벳 H자로 재채기가 나오려 해요

그러니까,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이만영 시인

198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시각디자인) 졸업. 제8회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 등단. LGAD 근무. 현재 한국언론진흥재단 근무. 2018년 39회 근로자문학제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