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영 시인 / H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꽉 막힌 내 표정을 하수관처럼 배는 점점 부풀어 오르고 어제는 코를 막고 샤워했어요 코를 아무리 풀어도 스며드는 악취는 쥐어짤 수 없네요 뺨에는 쓸모없는 근육만 생겨요 새로운 코가 생겼으면 해요 어디든지 달릴 수 있는 혈관이 놓였으면 해요 엘리베이터에 붙은 전단지를 봤어요 요즘도 막힌 수도관이 많은가 봐요 나는 꿈꾸느라 밤을 새워요 아니 밤을 새우려고 꿈을 꿔요
언제 죽을지 몰라 유서를 써 봤어요 나에게 보내는 메일함으로 죽음은 꺼진 텔레비전 화면 같은 것 정지했다가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모니터처럼 안녕하세요 누수 탐지 연구소 소장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 오피스텔 302호에 살고 어딘가가 막혀 나날이 뚱뚱해지는 중입니다 여러 업체에 수리를 요청해 보았지만 코끝만 간질간질 아무도 연락하지 않네요
어딘가 퉁퉁 부어 오르고 속이 뻥 뚫리면 고래처럼 좋아할 거예요 창밖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칠 거예요 알파벳 H자로 재채기가 나오려 해요 그러니까,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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