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우 시인 / 달의 전설
달의 감옥은 지금도 떠오른다 드문드문 등불 켜진 채 어둠 속에 잠겨 감옥 밖에서는 한가로이 등불을 헤아린다 등불 하나, 나 하나 어둠 둘, 나 둘
아주 먼 옛날에는 달의 감옥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다 삶에 지친 사람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등불을 켜고 상처가 나을 때까지 며칠씩 있다가 내려오곤 했다 그런 날은 피고름 섞인 비가 내리고 지상의 등불들은 가물거리며 숨을 죽였다 더러는 영원히 내려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사 다리를 오르는 사람이 없어지자 사다리는 잊혀져갔다 간혹 저녁뉴스 시간에 사다리를 보았다는 사람과 달의 감옥에 갔다 왔다는 사람의 소식이 방송되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은 달을 닮은 감옥을 가슴 속에 지니고 태어난다는 전설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아직도 한 달 에 한 번씩 모든 방에 불이 켜진다 내려오지 않은 사람들의 영혼이 일제히 등불을 밝히고 지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일 거라고 신비주의자들은 말하지만 지상의 종말에 대한 경고라 기도 하지만 정확히는 아무도 모른다 메시지가 아니라 단순한 자연현상이라고 과학자들은 믿고 있다
무심하게도 등불 하나, 나 하나 어둠 둘, 나 둘 한가로이 헤아리고 있다
박강우 시인 / Jungle Book 3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 텅 빈 해 안 길을 찍고 텅 빈 벤치를 찍고 까마귀가 홀로 앉 아 있는 바위를 찍었더니 까마귀가 가로등에 올라 앉아 사진을 찍는다 텅 빈 해안 길과 텅 빈 벤치에 까마귀가 가득하다 까마귀의 깃털에 가려진 나는 보이지 않는다 확대를 해보아도 까마귀 숫자만 늘어나고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저 까마귀중 한 마리 일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똑 같아 보이는 까마귀들 한 마리씩 색깔을 입힌다 해안길에 있는 놈들은 붉은 색 계통으로 벤치에 있던 놈들은 파란색 계통 으로 바위에 앉아 있던 놈은 노란색 계통으로 아무리 색 깔을 입혀려 해도 까만색으로 남는 저 한놈은 누구 일까 까만색으로 남은 놈이 냄비를 꺼내 요리를 준 비한다 다른 놈들을 모두 잡아 깃털을 뽑는다 까만 색 죽이 만들어 진다 검은 콩죽 맛이다 영화가 끝 날 때까지 까만색으로 살아남은 저 놈은 과연 누구 일까 검은 콩죽을 먹으며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멀리 바위산에서는 코스모스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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