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숙 시인 / 사해(死海)
나의 가슴바닥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 온갖 이야기 흘러들지만 유출구는 없어 기다려야 하네 시간의 투명한 감옥이네
나의 가슴 깊숙이 잠입(潛入)할 순 없다네 밀어내고 밀어내는 내 순결한 표면장력 위에 가만히 등 기대어 누워보게나 무등 태우며 안아주겠네 아무도 내게 와서 자살할 순 없다네
메마른 태양 볕에 졸이고 졸여 유황 짙은 한 사발 약이 되었네 어루만져 씻어주려네 지친 그대여 나의 외로움이 그대 온 몸 감싸주는 약이 되리니
모든 이야기들 땅 속으로 스며들어 조용조용 흘러드는 이 가슴바닥, 사막의 눈동자로 빛나고 있네 (푸른 불꽃 어른거리는 고밀도의 보석 한 알) 고요히 눈을 뜨고 기다리네 그대, 먼 길 걸어 내게로 오게
김연숙 시인 / 미완의 오벨리스크
불꽃나무 타오르는 나일의 동쪽 아스완 달아오른 화강암의 땅 채석장 터엔 미완의 오벨리스크 누워 있다
쏘아지지 않은 화살 깨어나지 않은 태양왕국의 너무 깊은 꿈 그 미끈한 옆구리를 한 발 한 발 걸어가 본다 치솟을 수 있는 정점까지 올라가 본다 41.7미터의 상향의지 --땅과 하늘을 통교하리라
낯선 제국의 광장 한가운데 볼모처럼 서있는 고왕국의 화살탑들 제국의 힘으로도 반출하지 못한 여기, 가장 거대한 백일몽
매운 꼭지점을 향해 힘 모으던 대지의 심장박동이 환영처럼 증발하는 이 한낮
낙하해도 좋다 잠든 네 위에 서성대며 기념촬영하는 이 삶의 관광객 우뚝 솟은 네 발치에 피꽃 튀는 한 그루, 불꽃되어 타고 싶다
일어서라, 장엄한 꿈의 증거 수천 년 누워만 있던 너의 직립을 이제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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