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시인 / 한 살 때 배운 것
방바닥을 기어 다니던 아이가 오늘은 이층계단을 기어오른다 오르다 쉬고 쉬다 오르더니 꼭대기에 올라가서는 혼자 내려오지 못하고 손을 내민다 그래 올라가기 보다는 내려오기가 훨씬 힘들지 “얘야! 그래서 사람은 일생 내내 내려오는 연습을 하면서 살아야 된단다 혹자는 한 살 때 배운 것도 까마득하게 잊고 살다가 망신을 당하곤 하지 이런 걸 잊지 않고 산 사람을 성공했다고 한단다.”
이태규 시인 / 낙엽이 지지 않으면
숲속의 나무들은 낙엽이 지고 나서야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땅도 보이고 하늘도 보인다
어렴풋이 보이던 앞산도 또렷이 보인다
쓰러져 죽어가는 나무도 보인다
가지에 앉아 노래 부르는 산새의 고운 자태도 보인다
가을이 되자 내 몸에서도
낙엽이 하나씩 지기 시작한다.
이태규 시인 / 못을 뽑아본 사람은 안다
작은 못보다 큰 못이 어렵고 낮게 박힌 못보다 깊게 박힌 못이 어렵다 그보다도 어려운 것이 오래된 못이다 오래된 못 중에는 뽑히기보다 스스로 부러지기를 택하는 못도 있다 처음에는 성질이 다른 서먹함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정겹게 살아온 나무와 못 못을 뽑아 본 사람은 안다 성질이 강한 못이 먼저 산화되어 나무에 동화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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