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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두현 시인 / 지상에서 천국까지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2.

고두현 시인 / 지상에서 천국까지

 

 

소변기가 세 개 있다.

몇 발짝 더 가서 세 번째 앞에 선다.

첫 번째는 너무 많은 세례를

받았으므로 비워 두고

 

버스에서 타고 내릴 때

문 앞자리는 비워 둔다.

나보다 급한 사람

금방 타고 내릴 것 같아

 

공원묘지 봉분이 여럿 있다.

입구에서 가장 먼 곳까지 가 눕는다.

걸음 늦어 천국에 지각할

뒷사람을 생각하며.

 

 


 

 

고두현 시인 / 달의 뒷면을 보다

-바래길 연가·섬노래길

 

 

송정 솔바람해변 지나 설리 해안 구비 도는데

벌써 해가 저물었다

 

어두운 바다 너울거리는 물결 위로

별이 하나 떨어지고

돌이 홀로 빛나고

그 속에서 또 한 별이 떴다 지는 동안

반짝이는 삼단 머리 빗으며

네가 저녁 수평선 위로 돛배를 띄우는구나

 

밤의 문을 여는 건 등불만이 아니네

 

별에서 왔다가 별로 돌아간 사람들이

그토록 머물고 싶어 했던 이곳

처음부터 우리 귀 기울이고

함께 듣고 싶었던 그 말

한때 밤이었던 꽃의 씨앗들이

드디어 문 밖에서 열쇠를 꺼내 드는 풍경

 

목이 긴 호리병 속에서 수천 년 기다린 것이

지붕 위로 잠깐 솟았다 사라지던 것이

푸른 밤 별똥별 무리처럼 빛나는 것이

 

오, 은하의 물결에서 막 솟아오르는

너의 눈부신 뒷모습이라니!

 

 


 

고두현(高斗鉉) 시인

1963년 경남 남해(南海)출생.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3년『중앙일보(中央日報)』 신춘문예에 시「유배시첩(流配詩帖)」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으며, 2005년 제10회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1988년부터 『한국경제신문(韓國經濟新聞)』기자로 근무하고 있으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