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이은수 시인 / 익선동 골목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13.

이은수 시인 / 익선동 골목

 

태양을 가린 검은 장막 사이로

살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다

지글거리는 한낮이 지나가고

메마르게 부풀어 오르는 보도블록에

노란 민들레가 어색하게 실실 웃고

까칠하게 말라버린 우울이 찾아오면

대자연이 비명을 지르기 위해 여기를 찾아온다

중심을 기울이고 고개를 떨군 충혈된 시간

혼자보다 마음의 상처를 나눠 먹을 수 있는

불안 서넛이 앉아 기억을 건드리는 곳. 작은 오아시스

보따리를 풀며 열을 식힌다

모래 둔덕을 옮기는 바람이 불 때마다

갈매기살이 날아다니고

뒷다리도 날고 목살도 난다

골목에 냄새가 헤엄치듯 흐를 때

마음의 수평선은

채워져야 끊을 수 있는 감정들이

미역처럼 들러붙어 흐느적거린다

 

또렷한 심장이 뛰는 그곳은 혈중알코올농도 0.2

 

웹진 『시인광장』 2022년 12월호 발표

 

 


 

이은수 시인

2011년 《아동문예 》 동시 등단. 2021년《미네르바 》로 시 등단. 제 10회 동시집 『코끼리를 타고 바다를 달리면』 서울시 문학상 수상. 현재 『미네르바』 편집위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