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식 시인 / 연어 귀향
파도를 타던 꽃피는 이웃들과 함께 강으로 간다 그리운 햇살에 몸 반짝이며 솟구쳐 꽃무늬보다 싱그럽게 태어날 새끼들을 위하여 작은 폭포도 해일처럼 뛰어넘고 이삼 년 푸른 파돗발을 먹은 내가 강으로 거슬러 돌아간다
참 드넓은 세상 많이 구경했지 먹이사슬의 냉혹함으로 뒤를 돌아보면 큰 고기들의 횡포와 흉물스런 폭력 앞에 한낮의 행복한 가족 나들이도 불현듯 죽음이 되는 보호색으로 몸 부지하는 물고기들이 보인다
설레는 심장 쿡쿡 누르며 몇몇의 이웃들이 불룩한 배 강물에 담그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든다 큰 폭포 만나 절망하다가 갈대꽃 흩날리는 모래밭을 바라보며 비늘 조각조각 갈기를 세우고 몸 솟구친다
애틋한 새끼 태어날 곳 어찌 그립지 않으랴 빛나는 속살로 물안개를 뿜으면 그곳의 눈에 익은 색깔과 냄새 , 붉은무늬주둥이를 밤새워 흔들며 입덧으로 가슴 통통거리던 우리들은 강으로 간다 태반처럼 낮고 아늑한 강으로
꽃잠 자던 몸 풀기 위하여 모래와 자갈밭을 택하여 꼬리로 구덩이를 판다 뿌리의 터 꿈틀거리는 모래 속에 알을 낳고 꿈의 자갈로 덮고 나면 상처가 깊어 시린 강물에 몸을 떤다
나의 새끼들아 다시 가거라 너 태어나 아가미의 갈증보다 깊은 파도소리 들리거든 등뼈 꼿꼿이 세우고 먼 바다 거친 세상 속으로
고광식 시인 / 포장마차 소묘
노을의 입술 더듬으며 등 굽은 나무의자에 앉는다 숨 가쁜 낙지발로 몸을 꼬는 피곤한 허리띠를 풀고 진열장 밖으로 걸어 나온 내 생애의 하루가 그대의 시퍼런 식칼과 마주섰다 물오징어의 등뼈 곧추세우는 이 도시의 어디에 바다는 있을까 꿈틀대는 산낙지의 그리움도 포장마차의 무심한 천조각이 되어 꽃여울로 앉아 있고 귓가를 걸어가는 기다림은 쓸쓸한 소라의 목울음으로 도마 위에서 짧게 잘려나가는데 가슴에 묻은 꿈 하나 위장에서 떼지어 자맥질한다 젊은 어부가 끌고 온 바다가 마차 바퀴에 휘감긴 채 자꾸만 발 빠르게 달아나는 이 저녁 내 생애의 하루가 도마 위에서 낯선 모습으로 숨소리 고르게 칼질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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