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순 시인 / 雨水
꿈꿀까봐 두려운 입춘과 경칩 사이 깨끗이 까놓은 마늘, 싹이 돋아 하늘로 머리를 치켜세우고 있다 뿌리까지 잘랐는데 밤새 도망칠 궁리를 했던 거다 어쩌나, 나는 너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데 꿈깰까봐 두려운 입춘과 경칩 사이
황희순 시인 / 말벌의 거울
실내에 들어온 말벌을 한방에 추락시켰다 구석에 널브러져 뒷다리 한쪽을 번쩍 든다 죽어서도 사는 시늉 한다 날개 한쪽을 또 들어올린다 죽으나 사나 멈출 수 없는 건 날아오르는 꿈 꿈을 꾸며 날개 벼리는 모양이다 그래그래, 죽기 직전까지 너나 나나 그래야 착한 거지 그렇다 해도 야금야금 죽는 건 싫어 한 번 더 밟을까 잘못 들어선 길에 나는 안녕한가 어깨를 목을 옴죽거리며 사그라드는 목숨 지켜보고 있다 나를 지켜보는 건 누구?
황희순 시인 / 향어의 거울
우리가 물고기와 공감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노는 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낚싯바늘에 꿰어 물 밖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가 울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물속에 빠졌을 때 울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만만한 목숨이 어디 있겠는가 낚싯바늘에 끌려나온 향어가 눈을 휩뜨고 펄펄 뛴다 2만 년 전에도 낚싯바늘을 썼다는데 물고기로 사는 거 쉽지 않았겠다 삼키면 안 되는 미끼 곳곳에 있어 사람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아 세상을 안다고 뭐가 달라지겠니 속울음도 씹지 마라 울어서 해결될 일 있다면, 나 매일매일 울었을 거야 안됐지만 오늘은 내 살 위해 네, 살이 필요해 * 조너선 벨컴, 『물고기는 알고 있다』에서
-시집 『수혈놀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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