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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고광식 시인 / 연어 귀향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3. 2. 20.

고광식 시인 / 연어 귀향

 

 

파도를 타던 꽃피는 이웃들과 함께 강으로 간다

그리운 햇살에 몸 반짝이며 솟구쳐

꽃무늬보다 싱그럽게 태어날 새끼들을 위하여

작은 폭포도 해일처럼 뛰어넘고

이삼 년 푸른 파돗발을 먹은 내가 강으로 거슬러 돌아간다

 

참 드넓은 세상 많이 구경했지

먹이사슬의 냉혹함으로 뒤를 돌아보면 큰 고기들의 횡포와 흉물스런 폭력 앞에

한낮의 행복한 가족 나들이도 불현듯 죽음이 되는

보호색으로 몸 부지하는 물고기들이 보인다

 

설레는 심장 쿡쿡 누르며 몇몇의 이웃들이

불룩한 배 강물에 담그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든다

큰 폭포 만나 절망하다가

갈대꽃 흩날리는 모래밭을 바라보며

비늘 조각조각 갈기를 세우고 몸 솟구친다

 

애틋한 새끼 태어날 곳 어찌 그립지 않으랴

빛나는 속살로 물안개를 뿜으면

그곳의 눈에 익은 색깔과 냄새 ,

붉은무늬주둥이를 밤새워 흔들며

입덧으로 가슴 통통거리던 우리들은 강으로 간다

태반처럼 낮고 아늑한 강으로

 

꽃잠 자던 몸 풀기 위하여

모래와 자갈밭을 택하여 꼬리로 구덩이를 판다

뿌리의 터 꿈틀거리는 모래 속에

알을 낳고 꿈의 자갈로 덮고 나면

상처가 깊어 시린 강물에 몸을 떤다

 

나의 새끼들아 다시 가거라

너 태어나 아가미의 갈증보다 깊은 파도소리 들리거든

등뼈 꼿꼿이 세우고

먼 바다 거친 세상 속으로

 

 


 

 

고광식 시인 / 포장마차 소묘

 

 

 노을의 입술 더듬으며 등 굽은 나무의자에 앉는다 숨 가쁜 낙지발로 몸을 꼬는 피곤한 허리띠를 풀고 진열장 밖으로 걸어 나온 내 생애의 하루가 그대의 시퍼런 식칼과 마주섰다 물오징어의 등뼈 곧추세우는 이 도시의 어디에 바다는 있을까 꿈틀대는 산낙지의 그리움도 포장마차의 무심한 천조각이 되어 꽃여울로 앉아 있고 귓가를 걸어가는 기다림은 쓸쓸한 소라의 목울음으로 도마 위에서 짧게 잘려나가는데 가슴에 묻은 꿈 하나 위장에서 떼지어 자맥질한다 젊은 어부가 끌고 온 바다가 마차 바퀴에 휘감긴 채 자꾸만 발 빠르게 달아나는 이 저녁 내 생애의 하루가 도마 위에서 낯선 모습으로 숨소리 고르게 칼질당하고 있다

 

 


 

고광식 시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를 졸업. 1990년 《민족과 문학》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 추계예술대 출강, 시집으로 『외계 행성 사과밭』 등이 있음. 1991년 <청구문화제> 시부문 대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열린시학> 편집위원. 추계예술대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