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 / 나의 삶은 나의 삶은 문이란 문은 다 열린 집. 흐르는 깊은, 깊은 물. 다이빙과 솟구침. 물거품. 나의 삶은 낯선 가족들과의 소풍. 가족들, 열심히 짓지만 왜 짖는지 모르는 짐승들. 가라앉으며, 가라앉으며, 웃는 나의 삶은 녹슨 칼. 무디고 무딘 칼, 나를 찌르지 못하고. 나의 삶은 비오는 허구한 날, 머리채 꼬나 잡고 이년저년 싸우는 술집 작부들. 나의 삶은. 얼어붙은 손가락, 일찌기 집 나와 떠도는 아이의 손가락 하나 녹여 줄 리 없고. 나의 삶은 버스 안에서 고함지르던 실성한 사내. 사내의 헛소리. 그래도 나의 삶은 풀밭. 끝없는 풀밭을 걷는 여자처럼 예쁘고. -시집 <어둠속의 시> 1979년작품
이성복 시인 / 숨길 수 없는 노래 3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길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두 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그리고 그 사이엔 아무도 발디딜 수 없는 고요한 사막이 있습니다 나의 일생은 두개의 다른 죽음 사이에 말이음표처럼 놓여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오랜 저녁빛에 눈먼 두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대의 먼 길을 찾아서입니다.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현정 시인 /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외 3편 (0) | 2023.02.26 |
---|---|
이문재 시인 / 식탁은 지구다 외 1편 (0) | 2023.02.26 |
김덕현 시인 / 단단한 책 외 1편 (0) | 2023.02.26 |
최승자 시인 / 연습 외 1편 (0) | 2023.02.26 |
안명옥 시인 / 흔적 외 1편 (0) | 2023.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