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리 시인 / 저, 저 하는 사이에
그가 커피숍에 들어섰을 때 재킷 뒤에 세탁소 꼬리표가 그대로 달려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왜 아무도 말해주지 못했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애써 준비한 말 대신 튀어나온 엉뚱한 말처럼 저 꼬리표 탯줄인지 모른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상견례하는 자리에서 한쪽 인조 속눈썹이 떨어져나간 것도 모르고 한껏 고요히 앉아 있던 일 각기 지닌 삶이 너무 진지해서 그 일 누구도 말해주지 못했을 것이다 저, 저, 하면서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7년간의 연애를 덮고 한 달 만에 시집간 이모는 그 7년을 어디에 넣어 갔을까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아니라 아니라 못하고 발목이 빠져드는데도 저, 저, 하면서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이규리 시인 / 레고나라에서 우리
식상하게 이유를 길게 말 할 필요가 없어요 대신 레고 블록을 주세요
레고나라에도 이합집산이 있는데 아이들이 얼마나 일찍 철이 드는지 빨강과 파랑을 달리 끼워도 살짝 돌아보고 웃음 지을 뿐이에요 앞바퀴와 뒤 바퀴를 바꾸면 조금 투덜거리지만 이내 굴러 가고 있으니까요
리 리 릿자로 끝나는 말은,
그런데 조심해야 할 것은 바꾸어 사용하더라도 이유를 모르지는 마세요 이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늦지는 마세요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야 하니까요
블록과 블록, 새와 구름 화면과 화면을 터치 터치 상상을 끼우고 빼고 조립하며서
어느 별은 태어나고 어느 별은 추락해도 끄떡없어요
이별도 다시 끼우면 되니까요 빨강은 다 타버린단 말이야 파랑을 줘 그런 동안
꿈이 착착 도착 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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